본문 말씀
2:17 보라,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그의 뜻을 알고 또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 더 훌륭한 것들을 인정하여
19 네 스스로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형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내자요,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20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요, 어린 아기들의 선생이라고 자신하니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안다고 자랑한다.
그는 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며, 그것에 동의한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내자”, “빛”,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 “어린 아기들의 선생.”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성경에 대해 입술로만 존중을 표할 뿐이다.
랍비들은 구약성경인 율법과 선지서들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성경 해석에 대한 주석의 주석의 또 주석을 연구한다.
(토라(모세오경), 미쉬나, 탈무드, 중세 랍비 주석, 현대 랍비 주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탈무드는 엄청난 권위를 가진다.
그래서 실제로는 성경 본문보다 “유명한 랍비가 어떻게 해석했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네 단계의 권위를 더 높여 놓은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메시아를 거부한 이후, 그분의 초림을 예언했던 성경 말씀들을 거부한 데 대한 변명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들을 “재해석”하여, 그것들이 더 이상 예언이 아니라고 만들어 버렸다.
①이사야 7:14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아하스 시대에 태어난 어떤 아이 (히스키야 혹은 다른 아이)로 본다.
②이사야 9:6 “이는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히스키야 왕이나 어떤 다른 “선한” 왕이라고 해석한다.
③시편 22편,
다윗 자신의 고난이라고 본다.
④이사야 53장,
오늘날 표준적인 랍비적 가르침은 고난받는 종이 이스라엘 민족 자체이며, 그들이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인도하기 위해 고난받고 있다는 것이다.
21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미워하는 네가 신당 물건을 훔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도다.
여기서의 핵심은, 단지 십계명을 가지고 있거나 심지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고 해서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4절,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도다.”
이방인들은 21-23절에서 유대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유대인들과 그들의 성경과 그들의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구약의 예는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게 만들었을 때이다.
25 네가 율법을 지킨다면 할례가 정녕 유익하지만 네가 율법을 위반하는 자가 되면 네 할례가 무할례로 되느니라.
26 그러므로 만일 무할례자가 율법의 의를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를 할례로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법문과 할례로써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않겠느냐?
28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26 그러므로 만일 무할례자가 율법의 의를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를 할례로 여길 것이 아니냐?
유대인들을 “할례”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할례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할례를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며 할례를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고전7:19)
할례는 단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해 다른 이방 민족들과 구별되었다는 육체적인 표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할례자든 무할례자든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있어서 할례는 그가 율법을 지킬 때에만 유익하다.
할례가 상징하는 언약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너는 완전하라.”(창 17:1)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이 언약의 조건을 어긴다면, 할례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네가 율법을 위반하는 자가 되면 네 할례가 무할례로 되느니라.”(25)
대부분의 경우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하신 말씀을 가져다가 신약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포피를 할례하고 더 이상 목을 굳게 하지 말라.”(신 10:16)
“보라, 주가 말하노라. 그 날들이 오면 내가 할례받은 모든 자들을 할례받지 아니한 자들과 더불어 벌하리니 곧 이집트와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멀리 떨어진 변경에 사는 모든 자들과 광야에 사는 자들이니 이는 이 모든 민족들이 할례받지 아니하였으며, 또 이스라엘의 온 집도 마음에 할례받지 아니하였음이라.”(렘 9:25-26)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만일 어떤 유대인이 마귀처럼 산다면 주께서는 그 유대인을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같이 여기신다.
“그러므로 만일 무할례자가 율법의 의를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를 할례로 여길 것이 아니냐?”(26)
율법을 어기는 유대인이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이방인이 하나님께서 자기 양심 속에 두신 법을 따른다면, 그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약속하신 영적인 복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의 무할례를 할례로 여길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유대인 남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에게 본래 상태에는 없는 두 가지를 행하게 하셨다.
첫째로 그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깎지 말아야 했다.
“또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수치가 된다는 것을 본성 그 자체까지도 너희에게 가르치고 있지 아니하느냐?”(고전 11:14)
둘째는 할례였다.
“또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법문과 할례로써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않겠느냐?”(27)
유대인은 자기 혈통을 매우 자랑하고, 자기 언약들과 약속들을 매우 자랑하지만, 언젠가 무할례자인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이방인들] 이 세대[유대인들]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파로 회개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위대한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태복음 12:41)
“심판 때에 남방의 여왕[이방인]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유대인들]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 여인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에서 왔음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태복음 12:42)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 때문에 이방인들에 의해, 모세에 의해(요 5:45-47), 아브라함에 의해(요 8:39-40, 53-58), 성경에 의해(요 5:38-40),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입에 의해(마 27:25) 심판받게 될 것이다.
28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구절들은 두 종류의 유대인들을 구별하고 있다.
⑴첫째는 육체적인 유대인들이다.
그들의 민족은 율법과 구약성경 전체를 받았다(롬 3:2).
그들은 주변의 모든 민족들로부터 육체적으로 구별되었고 카나안 땅을 받았다.
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회복되었고, 두 번째로 쫓겨났다가 또다시 두 번째로 회복되었다(사 11:11).
⑵둘째는 이방인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양심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10:32)
하나님의 교회는 육체적인 민족이나 인종이 아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도 없고 종이나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으니 이는 너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라.”(갈 3:27-28).
구원받을 때 성령께서 몸 안에 들어오시면, 내면에 할례를 행하신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로새서 2:11)
로마서 2:29에서 바울은 “마음의 할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로마서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골로새서 2장에 계시된 분명한 사실은, 신약에서의 내적인 할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위치의 결과이며, 그것은 결코 바뀔 수 없다는 점이다.
로마서 2장 17절부터 29절까지는 신약적 교리의 의미로 적용될 수는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구약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로마서 2:29의 “마음의 할례”는 의지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포피를 할례하고 더 이상 목을 굳게 하지 말라.”(신명기 10:16)
마태복음 8:10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로마 백부장에 대하여 “이스라엘에서는 이처럼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나니, 결코 없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당시 어떤 유대인보다도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주님께서는 그 백부장의 사건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왕국의 자녀들은 바깥 흑암에 던져져서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라.”(마 8:11-12).
그 왕국 안에는 “아브라함과 함께 앉는” 이방인들도 있고, “바깥 흑암에 던져지는” 유대인들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시대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에게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면 아브라함의 일을 행하였으리라.”(요 8:39)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말씀하실 때, 엘리야 시대의 사르밧 과부와 엘리사 시대의 나아만이라는 두 구약의 예를 사용하시면서,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사례를 말씀하셨다(눅 4:25-27).
그러므로 구약 시대 전체를 지나 그리스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천년왕국에서도, 주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은 지옥으로 보내시고 순종하는 이방인들은 구원하실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2:28-29에서 설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약에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분께 속하게 되면, 바울은 그 사람이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믿음으로 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너희는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이니라.”(갈 3:7, 29).
구약의 “마음의 할례”(신 10:16, 롬 2:29)와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할례”는 거듭남의 결과이며, 따라서 그것은 의지의 행위가 아니다(요 1:13).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결코 변할 수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치에 달려 있기 때문에(롬 8:38-39), “그리스도의 할례”는 영원한 것이다.
신약에서 당신의 신분(standing)은 당신의 상태(state)와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