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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경침례교회 주보
제 438 호 2026년 6월 07일 주보

부산성경침례교회주보

주보 목차
오전성경공부
로마서 강해 12
조도희 담임목사 | 로마서 2장 12절-16절
오전설교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
조도희 담임목사 | 창세기 15장 7절-21절
오후설교
제자가 넘어질 때
조도희 담임목사 | 누가복음 22장 54절-62절
수요설교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
조도희 담임목사 | 출애굽기 35장 30절 - 36장 7절
오전성경공부

로마서 강해 12

조도희 담임목사
로마서 2장 12절-16절
본문 말씀
12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의하여 심판받게 되리니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인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될 것임이라. 14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이것들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16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있으리라.

12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의하여 심판받게 되리니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인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될 것임이라.”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시내 산 아래에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십계명을 들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

 

14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이것들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거슬러 죄를 지었고(“율법 없이”),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슬러 죄를 지었다.

유대인들이 단지 율법을 들었다고 해서 그들이 율법에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율법에 순종한 사람이 구약 시대에는 주께서 의롭다 하실 사람이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양심 안에서 율법을 알고 있으며, 그 양심이 더럽혀지고 화인 맞은 상태에 이르지 않는 한 그것을 실행한다.

 

20:3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데려간 여인으로 인하여 네가 죽은 사람이 되리니, 이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아내임이라.” 하시더라.”

20:4, 그러나 아비멜렉이 그녀에게 가까이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아뢰기를 주여, 주께서는 의로운 민족도 죽이시려나이까? 그가 그녀는 나의 누이라.’고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이까? 그녀 자신도 말하기를 그는 나의 오라비라.’하였나이다. 나는 마음의 온전함과 내 손의 무죄함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더라.”

양심은 화인 맞을 수 있으며(딤전 4:2), 잘못을 행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양심은 더럽혀질 수 있으며(1:15), 오히려 악을 행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15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마귀는 사람이 죄를 짓도록 변명거리를 주기 위해 일곱 가지를 가르친다.

우리는 원래 항상 그렇게 해 왔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

그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조금쯤은 괜찮다.”

우리는 언제 멈춰야 할지 안다.”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나.”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나.”

 

반면 그리스도인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옳은가?”

그것이 덕을 세우는가?”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 복 주시기를 구할 수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주께서 다시 오실 때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실까?”

이 다섯 가지는 전혀 다른 기준이며, 그것들은 16절의 시험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있으리라.”

 

큰 백보좌 심판 때에는 당신이 결코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자신과 심판받는 그 사람만 알고 있었던 비밀들을 밝히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정확하게 심판하실 것이며, 완전한 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완전한 기준인 복음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오전설교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

조도희 담임목사
창세기 15장 7절-21절
본문 말씀
7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려고 칼데아 우르에서 너를 불러온 주라.” 하시니, 8 그가 말씀드리기를 “주 하나님이여, 내가 이 땅을 유업으로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더라. 9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 하시니, 10 그가 이 모든 것을 주께로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가운데로 쪼개 그 쪼갠 것을 서로 마주 대하여 놓았으나, 새들은 쪼개지 아니하였으니, 11 새들이 그 시체 위에 내리자 아브람이 그것들을 쫓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정상적으로 주님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오늘 당신이 가진 믿음은 당신이 처음 구원받았을 때 가졌던 믿음보다 훨씬 더 큰 믿음일 것이다. 물론 믿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도, 실제로 믿음을 행사하게 하는 믿음도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믿음은 마치 근육과도 같다. 사용할수록 더욱 커지고 강해진다. 주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어려운 길들을 지나가게 하시는 목적이 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그렇게 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고향과 가족과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났다. 그는 믿음으로 여행했고 믿음으로 살아왔다. 그는 하나의 단순한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따랐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땅을 주시고 또한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아브람이 소유한 그 위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아직 영적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위해 훨씬 더 크고 깊은 시험들을 준비해 두고 계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주님께서는 아브람만 성장시키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도 성장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을 날마다 더욱 성숙한 성도로 빚어 가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을 믿음의 초보 단계에 머물게 하시지 않고, 더욱 깊은 신뢰와 순종의 자리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신다. 이제 이 본문 속에 나타나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하는 믿음이다(7-8).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려고 칼데아 우르에서 너를 불러온 주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이 단락을 시작하시면서 자신이 누구신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아브람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아브람에게 그가 지금 누구와 상대하고 있는지를 기억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삶의 모든 사건들을 실제로 누가 주관하고 계신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부터 계셨고,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계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 그분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다(욥기 42:2; 누가복음 1:37). 그분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다(히브리서 13:5; 마태복음 28:20). 그분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시다(히브리서 4:13; 잠언 15:3). 그분은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신다. 만일 우리가 이 진리를 진심으로 깨닫고 붙들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 때문임을 상기시키신다. 아브람은 자신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었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된 것, 그리고 우리가 있는 자리가 모두 주님의 역사하심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10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당신의 삶의 어느 영역을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당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의 결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신이 왜 그를 칼데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는지를 다시 상기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땅을 주시기 위해 그를 이끌어 내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자녀 하나 없는 이 나그네를 위대한 민족의 조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위한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로마서 8: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여 스스로 고난과 아픔을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선한 계획이다. 언제나 가장 좋은 계획이다. 언제나 옳고 완전한 계획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길 가운데 행하라.

그가 말씀드리기를 주 하나님이여, 내가 이 땅을 유업으로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더 많은 이해를 구하며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신다.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더 깊은 이해를 구하는 믿음이다.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과정을 신뢰하는 믿음이다(9-11).

아브람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께서는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 요구를 하신다. 이 요구는 아브람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자 도전이었다. 그런데 사실 시험받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 하시니, 그가 이 모든 것을 주께로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가운데로 쪼개 그 쪼갠 것을 서로 마주 대하여 놓았으나, 새들은 쪼개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희생제물을 준비하라고 명하신다. 이 사건은 고대 시대에 사람들이 서로 언약을 맺을 때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그들은 짐승들을 둘로 쪼개어 그 조각들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주 놓은 후, 언약을 맺는 두 사람이 그 사이를 함께 지나갔다. 이것은 자신의 말과 약속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만일 내가 이 언약을 깨뜨린다면, 내가 이 짐승들과 같은 처지가 되기를 바란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이 준비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희생이 필요했고, 힘든 노동이 필요했으며, 피 흘리는 수고가 필요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이나 나의 삶에 어떤 요구를 하실 때, 그것이 종종 우리의 헌신과 수고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값싸게 얻어지지도 않는다. 게으른 사람에게 주어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들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그 대가는 무엇인가? 기도이다. 거룩함이다. 세상과의 분리이다. 순종이다. 고린도전서 3:12이 말하는 금과 은과 보석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무와 짚, 그루터기는 쉽게 모을 수 있지만, 금과 은과 보석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믿음을 성장시키실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성숙한 믿음은 헌신의 값을 지불하려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새들이 그 시체 위에 내리자 아브람이 그것들을 쫓았더라.” 아브람이 주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만나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맹금류들이 희생제물 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내어 희생제물이 뜯어먹히지 않도록 보호해야 했다. 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믿음의 삶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시면, 세상의 모든 독수리와 대머리수리가 몰려와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을 삼켜 버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탄은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탄의 존재 목적을 잊지 말라. “도둑은 오직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10:10) 하나님을 빼앗아가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시킨다. 세상은 당신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세상의 풍조라는 세상 길을 따르기를 원한다. 육신이 욕망 역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영적 독수리들이 몰려온다. 어떤 것들은 당신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 어떤 것들은 당신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어떤 것들은 주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헌신을 약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이루시려는 일을 지켜야 한다. 어떤 것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아브람에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요구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기다리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희생제물은 준비되었다. 그는 그것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곧바로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어둠이 내린 후에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셨다. 이 시간은 아브람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주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때때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역사하신다. 다만 그분의 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주님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어떤 일을 진행하고 계신다면 조급해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앞서 달려가고 싶은 습성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움직이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이사야 40:31은 이렇게 말씀한다. “오직 주를 앙망하는 자는 자기의 힘을 새롭게 하리니 독수리처럼 날개로 치솟을 것이요, 그들이 달려도 피곤치 않으며 걸어도 곤비치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때를 알고 계신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지 순종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성숙한 믿음은 준비하는 믿음이며, 지키는 믿음이며, 끝까지 기다리는 믿음이다.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이다(12-21).

해가 질 때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졌는데, 보라, 큰 흑암의 공포가 그에게 내리더라.”(12) 마침내 주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아브람은 큰 어둠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어둠의 일부는 단순히 시간 때문이었다. 이미 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어둠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 가운데 행하시는 역사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하시기 위해 그를 어두운 시기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자신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 같은 방식으로 일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인생의 어두운 시기로 보내심으로써 우리가 그분을 더욱 신뢰하도록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신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용광로의 어둠을 지나야 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속 어둠을 지나야 했다. 다니엘은 사자굴의 어둠을 지나야 했다. 노아는 온 세상이 심판받는 어둠 속을 지나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 어둠 속에서 주님께서 자신들의 상황을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는 분임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어두운 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만일 당신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삶 가운데 자신의 완전한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신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당신을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빚어 가고 계신다. 누구도 그것이 즐겁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익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어둠의 시간 동안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의 후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분명히 알지니 네 씨가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타국인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요, 그들이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겠고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또한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갈 것이며, 너는 충분히 늙은 나이에 장사될 것이라.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 하시니라.”(13-16)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루실 일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신다. 그 내용은 아브람에게 놀라울 뿐 아니라 두렵게 들렸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이집트에서 종이 될 것이며, 고난을 당할 것이고, 사 백 년 동안 압제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해 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 가운데 내려오셔서 희생제물 사이를 지나가신다. “해가 져서 어두웠는데 연기 나는 가마가 보이며, 불타는 등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17-21)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범죄한 이후 처음으로 땅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을 확증하고 계셨다. 원래 이러한 언약에서는 두 당사자가 함께 희생제물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이 언약은 다르다. 이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이다. 아브람이 무엇을 하든, 그의 후손들이 무엇을 하든, 이 언약은 하나님의 이름만큼이나 확실한 것이다.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육체적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무조건적 토지 언약이다. 따라서 이 언약은 교회가 대신 차지하는 것이 아니며,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야의 재림과 함께 문자적으로 성취하게 될 약속이다.

 

오늘 당신의 믿음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오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상황이 어떻게 보이든지, 환경이 얼마나 불리하든지, 감정이 무엇을 말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오후설교

제자가 넘어질 때

조도희 담임목사
누가복음 22장 54절-62절
본문 말씀
54 그리하여 그들이 주를 붙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데려가니, 그때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더라. 55 사람들이 관정 한가운데에 불을 피워 놓고 함께 앉아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앉아 있더라. 56 그런데 어떤 여종이 불 옆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유심히 보다가 말하기를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하니 57 그가 주를 부인하며 말하기를 “여자여,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니라. 58 잠시 후에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너도 그들에게 속한 자라.”고 하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사람아, 나는 아니라.”고 하더라. 59 한 시간쯤 지난 후 다른 사람이 장담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으니, 이는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임이라.”고 하더라. 60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사람아,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아직 말하고 있는데 곧 닭이 울더라. 61 그러자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쳐다보시니,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한지라. 62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더라.

이 장면은 성경에서 가장 슬픈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사건은 구원받은 한 사람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떨어진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가 죄의 수렁 속으로 얼마나 깊이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사람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다. “주여, 나는 주와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에도 갈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22:33) 그러나 그 밤이 끝나기 전에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된다. 성경은 인간이 만들어 낸 책이 아니다. 사람이 쓴 전기라면 영웅의 실패는 숨겼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베드로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그대로 기록하셨다. 왜 그런가? 첫째, 가장 훌륭한 사람도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이 본문은 베드로를 비난하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다. 이 본문은 우리 자신을 보게 하려고 기록된 것이다. 베드로의 실패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려는 것이다.

 

제자가 넘어질 때는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주님을 부인하며, 결국 주님 앞에서 깨어지는 때이다. 제자가 넘어질 때는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때이다(54-55).

베드로에게는 아직 좋은 점이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베드로는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주님을 향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본문은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그때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더라.” (54)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따라가기는 했다. 그러나 가까이 따르지 않았다. 그는 따라가기는 했다. 그러나 담대하게 따르지 않았다. 그는 따라가기는 했다. 그러나 충성스럽게 따르지 않았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따랐다.

많은 성도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교회를 떠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기도가 줄어든다. 말씀에서 멀어진다. 예배가 형식적이 된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사라진다.

그리고 55절은 더욱 심각한 장면을 보여 준다.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앉아 있더라.” 이제 베드로는 단지 잘못된 무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앉아 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주님의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이제는 주님의 원수들의 불가에 앉아 있다. 예수님은 안에서 고난당하고 계신다. 그러나 베드로는 밖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예수님은 진리를 위해 고난당하고 계신다. 그러나 베드로는 타협 속에서 편안함을 찾고 있다.

영적 타락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씩 시작된다. 먼저 거리가 생긴다. 그 다음에 영적 열정이 식는다. 그 다음에 타협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전에 결코 앉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자리에 앉게 된다. 오늘 당신은 어떠한가? 개인 기도가 식어졌는가? 성경을 읽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고 있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복음을 말하지 못하는가? 주님이 모욕당하는 자리에 침묵하며 앉아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멀찍이 떨어져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기도 가운데 주님 가까이에 있으라. 말씀 가운데 주님 가까이에 있으라. 순종 가운데 주님 가까이에 있으라. 왜냐하면 멀찍이 따르는 제자는 이미 넘어질 위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제자가 넘어질 때는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주님을 부인하며, 결국 주님 앞에서 깨어지는 때이다. 제자가 넘어질 때는 주님을 부인하는 때이다 (56-60).

불가에 앉아 있던 베드로를 한 여종이 알아보았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도다.” 놀라운 장면이다. 베드로는 겟세마네에서 칼을 뽑았던 사람이다.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장담했던 사람이다. “주여, 주와 함께라면 감옥이나 죽음에까지라도 가기로 준비되어 있나이다.”(33) 그런데 지금은 한 어린 여종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베드로는 말한다. “여자여,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첫 번째 부인이다. 조금 후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너도 그들에게 속한 자라.” 베드로는 말한다. “이 사람아, 나는 아니라. 두 번째 부인한 것이다. 이제 그는 주님뿐 아니라 자신이 제자라는 사실까지 부인하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나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참으로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으니, 이는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임이라.” 베드로는 다시 부인한다. 다른 복음서는 이때 그가 저주하며 맹세했다고 기록한다. “그가 저주하고 맹세하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더라”(26:74; 14:71).

죄는 점점 더 깊어진다. 한 번의 부인이 두 번째 부인을 낳고, 두 번째 부인이 세 번째 부인을 낳는다. 죄는 결코 혼자 머물지 않는다. 몇 시간 전 베드로는 말했다. “주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그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자기 확신의 결과이다. 사실 베드로는 첫 번째 부인을 하기 전에 이미 넘어져 있었다.

그는 자기 열심을 신뢰했다. 주님의 경고를 무시했다. 기도하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다. 입으로 한 부인은 마음속 붕괴의 결과였다.

오늘도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주님을 부인한다. 입술로 부인한다. 침묵으로 부인한다.

복음을 부끄러워함으로 부인한다.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임으로 부인한다. 디도서 1:16은 말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신뢰하지 말라. 마음을 신뢰하지 말라. 주님만 의지하라.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17:9) 베드로도 넘어졌다면 우리도 넘어질 수 있다.

 

제자가 넘어질 때는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주님을 부인하며, 결국 주님 앞에서 깨어지는 때이다. 제자가 넘어질 때는 주님 앞에서 깨어지는 때이다(60-62).

베드로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닭이 울었다.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경고였다.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성경은 놀라운 말씀을 기록한다. “그러자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쳐다보시니”(61) 그 시선은 어떤 시선이었을까? 진리의 시선이었다. 거룩함의 시선이었다. 상처 입은 사랑의 시선이었다. 그 시선은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야,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베드로야,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베드로야, 네가 넘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야,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그 시선은 베드로를 말씀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베드로가 ... 주의 말씀을 기억한지라..”(61)

참된 회개는 감정이 아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이다. 베드로는 기억했다. 경고를 기억했다. 자신의 자랑을 기억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더라.” 교만했던 사람이 깨어졌다. 자랑하던 사람이 깨어졌다.

자기를 신뢰하던 사람이 깨어졌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유다는 후회했다. 그러나 절망으로 갔다. 베드로는 통곡했다. 그러나 회복으로 갔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들킨 사실이 아니었다. 그를 사랑하신 주님을 부인했다는 사실이었다. 회개는 여기서 시작된다. 죄가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다.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다. 죄를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보게 될 때 회개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가 불가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눈물 흘리는 베드로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타협 속에서 손을 녹이는 것보다 회개 가운데 쓰디쓴 눈물을 흘리는 것이 훨씬 낫다. 완고한 마음으로 안에 앉아 있는 것보다 깨어진 마음으로 밖에서 우는 것이 훨씬 낫다. 세상의 불에 위로받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시선 앞에서 산산이 깨어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의 마음을 살펴보라. 당신은 가까이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멀찍이 따르고 있는가? 당신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는가, 아니면 부인하고 있는가? 당신은 세상의 불가에 앉아 있는가, 아니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있는가?

 

수요설교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

조도희 담임목사
출애굽기 35장 30절 - 36장 7절
본문 말씀
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르엘을 지명하여 부르셔서, 31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케 하시어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온갖 솜씨로 32 정교한 기술을 고안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온갖 정교한 기술로 만들게 하셨고 34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이 가르칠 수 있도록 그의 마음을 주장하셨고, 35 마음의 지혜로 그들을 충만케 하시어 모든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자의 일과, 정교한 기술자가 하는 일과, 청색, 자색, 주홍색 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는 자가 하는 일과, 베짜는 자가 하는 일과, 또 다른 일을 하는 자들이 하는 일과, 정교한 기술을 고안하는 자들의 일도 하게 하시느니라.” 하더라.

명제 :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은 예배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기억된다. 어떤 사람은 용기로 기억된다. 어떤 사람은 지성으로 기억된다. 어떤 사람은 업적으로 기억된다. 어떤 사람은 악행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억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왕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다. 그는 예배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 브살르엘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죽은 후에도 여러 세대에 걸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기억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주신 은사들을 존중하고 활용했기 때문에 기억되고 있다. 브살르엘은 무엇보다도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기억되고 있다. 오늘 우리는 브살르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의 비결을 배우고자 한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은 예배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특권으로 여기는 삶이다(35:30).

브살르엘은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사람이다. “주께서 ... 브살르엘을 지명하여 부르시고여기서 부르셨다(called)”라는 말은 소집하다, 선포하다, 지명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어떤 사람을 특별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신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브살르엘을 위대한 사명으로 부르셨다.

그의 사명은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브살르엘을 성막을 건축할 사람으로 택하심으로써 그를 크게 존귀하게 하셨다. 출애굽기 36:1은 브살르엘이 성소의 일을 위해 일하도록부름받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브살르엘과 아홀리압과 현명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 즉 주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어, 주께서 명령하셨던 모든 것대로 성소의 공사를 위한 모든 일을 어떻게 하는가를 알게 하신 자들이 일했더라.” 여기서 성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만나시기 위해 정하신 장소였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세운 이동식 장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 곧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였다. 그 성막 안에는 지성소라고 불리는 특별한 방이 있었다. 그 방 안에는 증거궤라고 불리는 궤가 있었고, 그 궤 위에는 자비의 자리인 자비석이 놓여 있었다.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한 속죄를 행할 때에는 흠 없는 희생 제물의 피를 긍휼의 자리에 뿌렸다. 그 피가 자비의 자리인 자비석에 뿌려지면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고,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또 한 해 동안 돌이켜졌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지성소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장소를 자신의 영광으로 채우셨고, 거기에서 백성들의 예배를 받으셨다. 브살르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만나실 장소를 건축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었다. 얼마나 큰 영광인가! 하나님께서는 브살르엘에게 다른 누구도 누리지 못한 특권을 주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브살르엘을 선택하셨을까?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브살르엘은 매우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훌이라는 사람이었다. 훌은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던 사람이다(출애굽기 17). 브살르엘은 하나님의 일에 헌신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충성됨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배웠다. 그의 신앙의 유산은 그의 삶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브살르엘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모든 자녀들을 특별한 사명으로 부르고 계신다. 물론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만나실 장소를 건축하도록 부름받지는 않았다. 그 일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을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거하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이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고린도후서 6:16)이다. 우리는 브살르엘이 한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모두 그분을 섬기도록 선택받았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에베소서 2:10).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신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어둡고 위험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사용하신 것에 감사하자.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부르심에 충성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며, 이 세상의 어둠 속에 그분의 빛을 널리 비추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은 예배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충성스럽게 사용하는 삶이다(35:31-35).

하나님은 사명과 함께 능력도 주신다. 브살르엘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맡은 사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공급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브살르엘에게 성막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술과 능력을 주셨다(31-35). 하나님게서는 브살르엘에게 지혜, 총명, 지식, 기술을 주셨다. 브살르엘은 일을 시작했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집을 설계하고, 만들고, 완성할 수 있는 지혜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그분을 섬기도록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분의 일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당신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성품도 공급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섬길 수 있는 은사들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까지 주셨다(갈라디아서 5:22-23). 이러한 특별한 은혜들은 우리가 단지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주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우리의 의무는 주님을 섬기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우리를 충분히 준비시키셨다는 사실을 알고 담대히 감당해야 한다. 그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며 깨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보여 주실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지금 보여 주신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유업의 상을 주께로부터 받을 줄 앎이니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음이라.”(3:23-24) 그 일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든지, 크고 중요한 일처럼 보이든지 상관없다. 우리는 이미 주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일어나 섬기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능력 없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은 예배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은 자신의 시대를 넘어 영적인 열매를 남기는 삶이다.

그러자 브살르엘과 아홀리압과 현명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 즉 주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어, 주께서 명령하셨던 모든 것대로 성소의 공사를 위한 모든 일을 어떻게 하는가를 알게 하신 자들이 일했더라. ...”(36:1-7).

본문의 나머지 부분은 성막 건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브살르엘과 그의 동역자들은 열심히 일했고, 백성들은 그 사역을 위해 기꺼이 헌물을 드렸다. 사실 백성들은 너무 많이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는 요청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모세가 명령을 내려 그들이 진중에 두루 공포하여 말하기를 남자든지 여자든지 성소의 예물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 하더라. 그리하여 백성들이 가져오는 것을 삼가더라. 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료가 성소를 만드는 모든 작업을 하기에 충분하며, 또 너무 많음이더라.”(출애굽기 36:3-7).

브살르엘의 사역은 예배를 가능하게 했다. 백성들은 기쁨으로 헌신했다. 성막은 완성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고, 백성들이 예배할 장소가 준비되었다. 그 후 주님께서 내려오셔서 성막을 자신의 임재로 가득 채우셨고,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그리하여 모세가 그 일을 마쳤더라. 그러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었으니 주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우더라.”(출애굽기 40:34). 이 모든 일은 브살르엘이 주님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과 기회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브살르엘의 영향력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브살르엘이 주님께 순종하며 섬겼기 때문에 그의 사역은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성막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방황하는 모든 기간 동안 사용되었다. 카나안 정복 시대에도 사용되었다. 재판관기 시대에도 사용되었다. 사울과 다윗 시대에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솔로몬이 주님을 위하여 웅장한 성전을 건축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브살르엘이 행한 사역은 그가 죽은 후에도 수백 년 동안 열매를 맺었다는 뜻이다. 그의 몸은 죽었지만, 그의 사역은 계속 살아 있었다.

당신도 바로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가? 아무도 죽은 뒤 완전히 잊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적어도 작은 기여라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그 사역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도 그렇게 사용하신다. 어머니가 자녀를 무릎에 앉혀 놓고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고, 그 자녀가 평생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간다면, 그 어머니의 투자는 계속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고, 그 자녀들이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김으로 그 믿음을 이어 간다면, 그 아버지의 투자는 계속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설교자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면, 그 설교자의 투자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열매를 맺게 된다. 성도가 잃어버린 사람에게 자신의 간증을 전하고,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면, 그 성도의 증언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가 미래까지 열매 맺도록 하시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린 작은 투자에 엄청난 수익을 얻게 하시는 방법도 가지고 계신다. 이 모든 것은 죽은 후에도 계속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심은 것은 우리가 떠난 후에도 계속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사역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충성된 섬김에 대해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하여 우리의 투자가 세상 끝날까지 계속 열매를 맺도록 하라고 권면하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완전히 깨닫게 되는 날은 하늘에 가서야 비로소 올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하라. 언젠가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이 온다. 오늘 주님의 일에 투자하라. 그 투자는 계속 열매를 맺을 것이며, 당신은 죽은 후에도 기억될 것이다.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영원을 위한 투자의 시간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어떤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위해 정하신 길을 찾고, 영광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까지 그 길을 충성스럽게 걸어가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그리고 장차 올 세상에서도 당신의 수고를 축복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막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세워 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그 삶을 통하여 위대한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브살르엘은 예배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특권으로 여겼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했다.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는 열매를 남겼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너는 네 시대에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브살르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라. 그러면 당신의 삶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의 예배를 돕고, 죽은 후에도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한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고전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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