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먹은 식사가 기억나는가? 그 맛이 가격만큼 만족스러웠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돈 주고 먹을 바에는 차라리..’라는 소감이 남았다면 후회스러운 식사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모수 서울’의 디너 한 끼 가격은 42만원이다. 미식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의 ‘르 상크(Le Cinq)’식당의 가격은 한 끼에 620유로, 우리나라 환율로 약 110만원이다. 한 끼의 식사 가격치고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정도 가치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기꺼이 돈을 투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사의 가격은 얼마일까? 아마 워렌버핏과의 점심식사를 꼽을 수 있겠다. 올 해 5월에 경매에 나온 그와의 식사가격은 한화로 약 135억에 팔렸다. 천문학적인 가격을 지불한 이들은 나름대로 오랜 고민 후 그 정도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온 인류의 역사 가운데, 단연코 가장 비싼 값을 치루고 밥을 사 먹은 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는 그 결정에 대해 매우 후회했다. 바로 본문의 후회의 인물, 에서이다. 그는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바친 대표적인 인물이다. 순간의 유익은 금방 사라져버렸지만, 후회는 영원히 남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 후회의 반면교사를 통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후회는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 후회를 남기는 결정을 왜 내리게 되는가의 과정과 그 결말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I 후회의 반면교사에게 배우라. 후회가 남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배우라.
야곱은 형이 가진 장자권을 탐내고 있었다. 여기서 에서가 가지고 있었던 “장자권”, 출생으로 말미암아 가지게 된 그 특별한 권리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자. 장자권은 1.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권리가 있다. 그 복에는 팔레스타인 땅의 유업도 포함되어 있다(창12:1~4). 2. 두 분깃을 받을 권리다(신21:17 ). 3.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에서가 포함될 수 있었다(창3:15). 그러나 그는 이것이 가져다 줄 복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것이 그리 큰 유익을 준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장자권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당장의 유익을 줄 수 없기에 무시하고 경시했다. 야곱은 반면 이 장자권의 가치를 알고 이를 원했다. 그래서 팥죽을 끓여 형에게 주기 전, 장자권을 대가로 요구한 것이다. 이 때, 에서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보라, 내가 죽을 지경인데, 이 장자권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
여기서 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팥죽을 먹지 못하면, 빵을 섭취하지 않으면 죽을 수 도 있다고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장의 필요를 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값을 치뤄도 좋다고 생각하는 육신적인 상태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에서가 당장 그 음식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몇 끼를 굶는다고 절대 죽지 않는다.
에서는 장자권이 자신에게 지금 당장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장자권이 그에게 당장 밥을 차려주고, 돈을 주지는 않는다. 장자권은 모두 미래에 유업을 받을 시점에 유익이 될 뿐이다. 그래서 그는 당장 자신의 육신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음식에 미래의 모든 복들을 바꿔버린다. 에서의 이 모습은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의 선한 일들과 같은 영적인 일들이 나에게 유익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당장의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들에 희생시켜 버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지금 내가 죽을 지경인데, 내가 급해죽겠는데, 당장 파산당할 위기인데, 내가 세상에서 루저가 되기 직전인데, 지금 내가 미래에 받을 복들을 따질 때겠어?”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내리는 모든 결정들이 에서의 후회의 결정인 것이다.
야곱은 매우 교활해보이고, 또 형의 모습을 변장해 복을 가로채는 모습을 읽을 때, 결코 야곱을 경건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야곱은 이 때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대가를 밝혔다. “나는 형의 장자권을 원한다. 이 음식을 먹고 싶거든 그것을 나에게 팔라.” 계약의 조건을 분명히 명시했다. 이 계약에 에서가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멀쩡한 의지로(단지 조금 배가 고픈 상태였지만) “거래”를 한 것이다. 그 계약은 맹세로 확정되었다. 에서가 그 결정을 유보할 여지가 없게 똑똑한 야곱은 확실한 보험책을 마련한 것이다. 야곱이 맹세를 요구했을 때, 에서는 뭔가 ‘쌔함’을 느꼈어야 한다. 지금까지 반 장난식으로 말했을지라도, 동생이 진지하게 맹세하라고 했을때, ‘얘가 진심이구나, 정말로 내 장자권을 팔라고, 원하고 있구나’ 느끼며 그 선택에 재고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에서는 맹세했고 자신의 장자권을 팥죽한 그릇과 빵조각에 팔고 말았다. 오늘날로 따지면 김밥 한줄과 라면 한그릇에 아버지로부터 받을 장자의 유산을 내어준 것보다 훨씬 더한 결정이었다. 단순히 물질적인 복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와 영원한 미래의 유업이 걸려있는 권리를 눈 앞에 음식에 내어준 것이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값을 주고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도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야 한다. 육신을 만족시키는 모든 죄, 사소한 불순종, 영적인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게으름과 여러 핑계로 변명하며 놓치는 것, 그 모든 결정들은 마치 에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영원한 것들로 순간적인 것들을 얻는 것이다. 순간의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내리는 결정들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들로 사야함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들사람인 에서, 들은 세상을 예표한다. 세상에서 분주히 활동하다가 지쳐버린 상태일 때 훨씬 육신적인 결정을 내리기 쉽다.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사람,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육신적인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발적이고 즉흥적으로, 깊이 생각해보지않고, 가치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모든 의사결정은 후회를 남긴다.
II 후회의 반면교사에게 배우라. 그 결정은 반드시 후회가 남음을 배우라.
“그리고 나서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팥죽을 주었더니, 그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자기 길을 갔더라. 이같이 에서가 자기의 장자권을 경시하였더라.”(34절) 장자권을 대가로 얻은 음식을 먹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배가 몹시 고픈 에서는 벌컥벌컥 팥죽을 들이키고 우적우적 빵을 씹어먹고 배를 채웠다. 금새 음식은 동이 났고 배부른 에서는 만족하며 ‘자기 길’을 갔다. 그는 그 당시에 후회하지 않았다. 먹고나자마자 후회했을 거였다면 애초에 그런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에서가 후회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우리는 다다음장 27장의 긴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삭이 자신이 사랑한 장자, 에서에게 모든 복을 주려고 날을 정했을 때, 야곱이 리브카와 계략을 세워 그 복을 찬탈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의 장자권과 관련된 상황이므로, 에서가 사냥감을 찾기까지 시간을 더 소요되게 하셨고, 그 시간 동안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음식을 배불리 먹고, 에서인줄 알았던 야곱에게 모든 장자권이 포함된 복을 내려준다. 모든 것은 이뤄졌다. 쇼는 마쳤고 막을 내렸을 때, 에서는 그제야 들어와 복을 유업으로 받고자 한다. 이삭은 심하게 떨면서 모든 복은 처음에 왔던 이가 다 이미 받았다 말한다. 우리는 27장 34절을 주목해봐야 한다.
[에서가 그의 아비의 말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오 내 아버지여, 내게도, 내게도 축복하소서.” 하니] 에서는 자신의 빼았긴 복에 대해 이제야 제대로 된 가치 판단을 내린다. 장자권은 너무나 가치있는 것이였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잃어버린 다음에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많은 경우 그것이 지나가버린 다음에야 그것이 귀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야 뒤늦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불효를 후회하는 많은 자녀들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곁을 떠나야 뒤늦게 고통스러워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이별한 사람들이 있고, 기회를 놓쳐버린 뒤에야 그 기회가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황금기회였음을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바르게 판단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소중히 대하는 삶을 산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후회는 쓰라리다. 에서는 대성통곡한다. 다 큰 어른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얼굴이 붉어지고 뱃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흐느낌이 올라온다. 눈이 퉁퉁 붓고 눈물로 얼굴이 지저분해진다. 자신의 늙은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울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자신의 아우 야곱이 나쁜 사기를 쳐서 그런 것인가? 모든 것이 야곱과 그를 사랑한 엄마 리브카와, 이를 잘 분별하지 못한 늙은 아버지 이삭 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그래서 자신이 축복을 유업으로 얻지 못한 것인가? 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그 날의 기억이다. 자신이 한 그릇의 음식으로, 붉은 팥죽과 빵으로 장자권을 팔겠다고 맹세한 그 날이 기억나지 않았을리 없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 모든 장자권과 축복과 유업을 잃어버리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에서는 야곱이 준 음식을 먹고 마셨다. 이미 유익을 취했다. 대가는 지불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후회할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 또한 얼마나 사소한 것들로, 사소한 욕심과 작은 정욕과 작은 불순종들에 영원한 것들로 대가를 치루고 있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것을 후회할 순간이 에서처럼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이 얼마나 작고 사소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영원하고 소중한 것을 값으로 지불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많은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어떤 후회들은 이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후회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결코 그런 후회를 남겨서는 안된다. 에서의 후회를 통해 반드시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업과 복,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그분께 쓰임받을 수 있는 기회, 영원히 존재하는 혼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후회를 남기면 안된다. 그것을 한낱 아무것도 아닌 팥죽 한그릇으로 바꾸라는 세상의 유혹에 절대로 굴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그 계약을 육신의 필요가 급하다고 하여 체결해서는 안된다.
III 후회의 반면교사에게 배우라.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바치지 말라. 그 후회는 영원히 남는다.
후회의 반면교사인 에서는 히브리서에서 다시 평가되고 있다. 믿음의 빛나는 영웅들이 11장에서 제시되고 12장에 들어서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따라야 할 본들이 총망라되고 결론이 지어진다. 그러나 그후 한 명의 실명이 거론되는데, 이 사람을 보고는 “이 사람처럼 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즉 이 사람도 본보기는 본보기이나, 그 사람의 실패를 보고 교훈을 얻으라는 “반면교사”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2:16,17을 보자. “음행하는 자나,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없도록 하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후 그가 축복을 유업으로 받으려고 했을 때 거절당하였으며, 눈물로 간절히 구하였지만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에서는 눈물로 간절히 구하였지만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에서의 눈물이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못했다.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후회가 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않은 죄인에게 분명히 그 순간을 보여주실 것이다. 받은 전도지를 구겨서 땅에 버린 순간, 복음 전파자의 음성에 얼굴을 찌푸리며 지나가고 속으로 욕했던 순간, 길에서 들리는 거리설교자의 음성을 어리석다라고 혀를 차며 지나갔던 순간들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들이 그 순간을 얼마나 후회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후회는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바친 것에 대한 후회다.
에서가 한 그릇 음식에 장자권을 판 것을 우리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이 사건을 자세히 조명하는 까닭은 성경을 읽는 성도로 하여금 반드시 교훈을 얻으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에서의 이 말도 안된는 선택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 있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세상에는 이러한 에서와 같은 선택을 내리는 많은 이를 발견하신다. 에서가 먹고 마시고 자기 길을 간 것처럼, “우리도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전15:32), (사22:13) 말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온통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자산, 부동산에만 연연해 하는 수많은 에서들을 보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 천년왕국과 영원에서 남을 유업과 상속에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에서처럼 “내가 죽을 지경인데 이 장자권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코웃음치는 수많은 이들이 있을 뿐이다.
에서는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희생시켰다. 한 그릇 음식에 장자권을 팔아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후회했다. 당신은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바치고 있지는 않은가? 순간의 유희와 만족, 재미, 쾌락을 위해 영원한 것들을 지불하고 있지는 않은가? 늙은 아버지 앞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는 에서의 모습을 반드시 기억하라.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는 순간에 제단에 영원한 것을 바치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순간, 사라져 버릴 이 세상을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기하는 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얻기 위해 보이는 것들을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육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영적인 것들을 포기해버리는 육신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것들을 위해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은 것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이 세상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섬기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청지기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후회 가운데 눈물로 맞는 이들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로 그분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유업을 받는 성도로 발견되어야 한다!
분명히 이 세상은, 육신은, 마귀는 순간의 것들을 제시하며 미래의 것들을 포기하라고 유혹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가 어떠한지 후회의 반면교사를 통해 배웠다. 누군가가 삶을 마칠 때, 그의 입에서 “나는 아무 후회도 없다” 라는 고백이 나왔다면 그는 최상의 삶을 산 것이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고백을 누가 할 수 있는지 아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과 신실하게 동행한 자만이 남길 수 있다. 예수님을 영접한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분과 동행했던 삶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과 동행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서는 후회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선물받은 최상의 삶이다. 혹 과거의 후회가 생각나는가? 그 일을 잊어버리라. 후회하는 것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지나간 것들을 잊어버리고, 오늘 이 순간 결심하라. “나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겠노라”결심하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고자 하시는 그 빛나는 유업을 단 1그램도, 1제곱센티미터도, 1명의 혼도 잃지 않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