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에 유명한 사건이 하나 나온다. 바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승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야곱은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또한 자신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다.
야곱은 태어났을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은 자, 찬탈자라 불린다.
야곱은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팔아 사게 되고(창 25:29~34) 자신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이 받아야 할 복을 가로채게 된다.(창 27:1~40)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날에 야곱을 죽이리라 마음먹게 된다.(창 27:41)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의 어머니 리브카가 형의 화가 풀릴 때까지 자신의 오라비 라반의 집으로 도피할 것을 말한다.(창 27:42~45)
야곱은 에서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아가고자 한다.(창 31:13)
창 32장은 그 여정을 다루고 있다. 창 32장 야곱의 여정과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기도의 자세와 영적인 교훈을 공부하도록 하겠다.
야곱은 자신의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형 에서의 의중을 떠보고자, 알아보고자 심부름꾼들을 보낸다.
여기서 4절에 보면 ‘당신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더불어 기거하며 거기에서 지금까지 머물렀나이다.
기거라는 말이 있다.
야곱이 라반의 땅에 기거하러 갔는가?
이것은 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좋은 말만 하는 것이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기거가 아니라 도피를 한 것이다.
야곱은 심부름꾼을 통해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말에 몹시 두려워하여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두 무리를 나누어 만약에 형이 한쪽을 치면 나머지는 도망하는 계획을 세웠다.
근데 거기서 계획이 끝이 아니라 한 번 더 (육신적) 기질을 발휘하는데 총 3부분으로 나누어 최전방은 자신의 두 여종과 그 자식들, 그 다음 전방은 자신이 덜 사랑하는 레아와 그녀의 자식들, 맨 후방은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요셉을 배치하였다.
전방 배치한 인원들은 총알받이이다.
형이 혹시나 최전방을 치면 본인은 도망하겠다는 생각이고 더 나아가는 레아까지 총알받이로 쓰겠다는 것이다.
야곱은 머리가 잘 돌아간다.
야곱의 처신은 육신적인 계획은 다 세우고 나서 마지막에 기도했다.
이것을 통해 배울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이것은 성도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과 대조되는 사람이 있다.
왕이 내게 말하기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느헤미야 2:4)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긴장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다음에 왕에게 대답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위기가 닥쳐왔다 하더라도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그분을 찾고 신뢰하는 성도를 도우신다.
야곱의 이런 행보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전형이다.
육신의 본질은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기 이전에 자신의 육신적 계획을 실행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정답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야곱은 육신의 계획을 다 세워둔 다음에야 기도한다. (창 32:9~12)
9 야곱이 말하기를 “오 내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 고향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를 잘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모든 진리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받을 가치가 없사온데,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으나, 지금은 두 무리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나의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구하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은 혹 그가 와서 나와 처자들을 칠까 함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선을 베풀어, 네 씨가 많아서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 같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더라.
이제서야 하나님께 그분의 약속을 상기시켜 드린다.
자신의 불의함과 무가치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베푸심에 감사했다.
이것은 본받아야 할 기도의 좋은 자세이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지혜가 있고 부족함이 없다 생각한다면 왜 기도하겠는가?
자신의 불의함과 무가치함을 말씀드리며 기도하는 것은 정직하고 올바르게 기도한 것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모든 진리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받을 가치가 없사온데..." 10절의 야곱이 고백을 잘 한 것이다.
숨김없이 마음 그대로 쏟으며 기도한다.
이것이 정직한 기도이다.
야곱의 순서는 잘못됐지만 이 기도의 자세는 본받아야 한다.
야곱의 목적 바로 에서의 손에서 구해 달라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고 자신은 무능력하며 무가치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그 다음 간구를 했다.
하지만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지 않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나중에 가서야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려야 했다.
야곱은 이렇게 기도하고도 불안해서 또 뇌물을 보내어 형의 화를 누그러뜨리려는 육신의 계획을 신뢰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은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결코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성도는 확신이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 7)
야곱은 선물을 먼저 보내고 그날 밤 아내들과 자식들을 얍복 여울을 건너게 했다.
그러나 야곱만은 여전히 북쪽에 남아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룬 지역이 브니엘이란 지역인데 이곳은 얍복강 북쪽을 지칭한다.
아내와 자식들은 건너보내고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다.
건너지 않은 것이다.
결국 다 에서에게 앞서 보내고 본인은 뒤로 혼자 빠져있는 것이다.
야곱의 비겁하고 연약한 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24 야곱이 홀로 남았는데 어떤 사람이 거기서 야곱과 날이 샐 때까지 맞붙어 싸우다가,
우리는 이 어떤 사람이 주의 천사임을 알 수 있다.
주의 천사는 하나님이시다.
천사는 왕하 19:35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앗시리아 대군 18만 5천명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야곱은 하나님과 실제적인 씨름을 했다고 볼 수 없다.
야곱은 그 천사에게 매달려 기도, 간구 한 것이다.
야곱은 날이 샐 때까지 주님께 매달리며 어떻게든 주님의 축복을 간구하고 있다.
이는 야곱의 현재상태가 에서에 의해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은 주님께로 부터 축복을 받으면 그런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25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야곱의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을 치니, 야곱의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이 그와 싸울 때에 위골되었더라.
안 그래도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자 매달리던 야곱은 자신의 넓적다리 우묵한 곳이 위골되는 고통을 겪자 더욱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있다.
주님께 간구하는 것 외에는 별도리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모른체하시면서 그냥 지나가시고자 하셨다.
야곱이 주님을 계속 붙잡자 야곱의 넓적다리 우묵한 곳을 쳐서 위골되게 하셨다.
위골은 뼈 속에 있던 힘줄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이 증상은 엄청난 고통을 유발시킨다.
그래서 야곱은 다리를 절뚝거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런데 어차피 축복하실 거 왜 이렇게 하셨는가?
주님께서는 야곱이 자신의 육신적인 계획과 생각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그의 육신을 치신 것이다.
야곱은 에서의 위협으로부터 나름대로 대처 할 36계 줄행랑 계획을 이미 세워두었다.
야곱은 속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적어도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이 위골된 이상 야곱은 비상시에 에서로 부터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고서는 더이상 인생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복주시지 않는다면 도망칠 수도 없고 여지없이 죽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하나님께만 매달릴 수 있도록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셨다.
이처럼 육신이 위골되고 절뚝거릴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 있다. 육신이 멀쩡하고 의지할 곳도 있다면 절실한 기도는 나오지 않는다.
기도가 응답받지 않을 때 나올 수 있는 신뢰할 자신만의 차선책, 플랜B 들을 하나님께서는 다 포기하게 만드셔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매달리게 하신다.
그럴 때 주님께서 일하실수 있다.
영광을 자신이 가로챌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공로로 돌릴 수 없게 만드신다.
그리스도인들도 때때로 복을 받을 때 까지 무기력한 매달림의 상태까지 가도록 부서져야 한다는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너무 간절하고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도움의 손길을 빨리 안 주실 때가 있다.
이때 야곱처럼 육신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것 모두 내려놓고 포기하게 하셔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실 목적으로 기다리게 하신다.
26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날이 새니 나로 가게 하라.” 하니, 야곱이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야곱은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축복을 받기 전에 다쳤음에도 여전히 기도로 분투하며 축복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확정을 해주시면 비로소 기도를 멈출 수 있다.
그전까진 계속 기도해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야곱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야곱을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벌어진 일로 인해서 야곱을 다룰 필요가 있으셨기 때문에 기도에 바로 응답해 주시지 않으셨다.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 정당하게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육신의 아버지를 속여서 복을 찬탈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매달릴 때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 전까지 계속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어떤 위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주님께 가장 먼저 달려가서 주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고 해결해 주실 때까지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한두 번 기도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27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야곱이니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난데없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질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을 통해 야곱이 이삭을 속여서 에서라고 답한 그 질문을 기억하게 하셨다.
이 질문을 통해서 야곱 자신이 하나님보시기에 얼마나 잘못되었고 불의한 자인지 시인하기 까지 기다리셨다.
야곱은 하나님께 거짓말 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물으셨다면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간구해야 한다.
드디어 야곱은 정직하게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야곱이니이다." 이 대답은 결국 자신은 찬탈자 이며 불의한 자라는 것을 고백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이끄신 것이다.
이로써 야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진실을 고백하게 되고 그런 후에야 기도응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쳤던 여러 잘못들과 하나님보시기에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들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계시기 때문에 다 고백해드려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야곱은 자신의 정직한 고백을 아뢴 이후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결코 자신을 감추거나 스스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자신의 상태를 자백하며 육신을 의뢰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는 가운데 정직하게 기도해야 한다.
28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 이름이 더 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요,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니,
29 야곱이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간구하오니, 당신의 이름을 말해 주소서.” 하니, 그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며, 거기에서 야곱을 축복하더라.
야곱의 생애는 이름이 바뀌면서 완전히 전환됐다. 더이상 야곱의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마침내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축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씨를 그분의 백성이자 민족으로 확정하신 것이다. 에서의 위협이 완전히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창 32장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며 야곱은 하나님에 의해 바로 잡히며 끝까지 간구한대로 응답을 받아 축복을 누리게 됐다. 야곱의 연약함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셨다. 복주시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꿔주셨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실 이유가 있으시겠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님만을 신뢰하며 정직함으로 나아간다면 복을 안주실 이유가 없다. 담대함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