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명제 :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죄인에게 완전한 구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카나안 땅을 차지하고 정복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각 지파는 그들의 유업을 분배받았고, 전반적으로 그 땅의 정복은 완료되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민수기 35:1-34에서 모세에게 주셨던 명령을 그들이 수행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들은 “도피성”이라 불리는 여섯 개의 성읍을 지정해야 했다. 이 성읍들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었다. 그런 사고에 연루된 사람은 이 여섯 성읍 중 어느 곳으로든 도망하여 안전과 보호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 이 도피성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도피성들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제 이 도피성들이 어떻게 “안전의 장소”가 되는지를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살펴보자. 구원받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누구든지 안전의 장소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께로 도피하여 구원을 얻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죄인에게 완전한 구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죄인에게 완전한 구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첫 번째, 안전한 장소의 목적은 죄인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함이다(1-3).
이 성읍들은 실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면, 죽임을 당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족은 그 죽음을 대신 갚을 권리가 있었다(민 35:19-21). 그런데 주께서는 살인과 과실치사를 분명히 구별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을 경우, 그는 이 여섯 도피성 중 하나로 도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사고였다고 판명되면, 그는 “피의 보복자”로부터 보복을 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성읍들은 피난처로 세워졌다.
이 도피성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구원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성읍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이 도망하여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던 것처럼, 오늘날 예수는 안전의 장소가 되신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난다(롬 3:23, 롬 5:12, 시 58:3). 첫 번째 사람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이가 들고 죄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항상 죄를 선택한다. 우리는 출생으로도, 행위로도 유죄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심각하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자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던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도 사형 선고가 내려져 있다. 우리는 모두 “피의 보복자”에게 쫓기고 있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게 쫓기고 있다(롬 6:23).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에게 쫓지고 있다. 죽음 이후에는 지옥과 그 모든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시 9:17).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필요하다. 우리의 혼이 안전을 얻기 위해 달려갈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죄인이 도망하여 도움과 소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곳에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시작이 있다. 피의 보복자가 결코 손댈 수 없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종교적 선택지가 아니라, 죄인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보호처이다.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죄인에게 완전한 구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두 번째,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방법으로 마련되었다(1절).
이 성읍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이다. 이 성읍들은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자는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원하셨다. 그래서 “피의 보복자” 제도를 두셨다. 동시에, 단지 사고로 인해 죄를 범한 자들에게는 자비의 장소가 있다는 것도 가르치기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복음 3:16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떠올려 보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통한 영원한 구원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생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이 일은 전부 하나님의 역사이다. 사람이 종교를 만들면, 항상 자신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든다. 행위의 체계를 세우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어떤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책임을 지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 중심에서 제외시키신다. 사람은 단지 믿음으로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신뢰할 뿐이다. 그리고 그 믿음조차도 주께서 주시는 것이다(엡 2:8-9).
이 성읍들은 은혜로 마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과실치사한 자도 다른 살인자들과 같이 죽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은혜 가운데, 실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자들이 피난처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그대로 지옥에 보내실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유죄이며, 지옥 불 속에서의 정죄 외에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찬양한다. “우리는 모두 양같이 길을 잃어 각자 자기의 길로 돌이켰으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도다.”(사 53:6). 예수께서 값을 치르셨기에,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그분을 통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말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그 구원의 과정을 시작하신다(요 6:44; 엡 2:1). 하나님께서 그 구원의 방법을 제공하신다(롬 3:25; 행 4:12; 요 14:6).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행 16:31; 롬 10:13).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을 지키신다(벧전 1:5; 요 10:28).
우리 스스로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천국에 가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에 이르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 안전한 장소는 인간이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준비하신 구원의 길이다.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죄인에게 완전한 구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세 번째로, 안전한 장소는 어떤 위험도 없는 완전한 보호의 영역이다(4-6절, 9절).
과실치사자가 그 성읍에 도착하면, 장로들이 그의 사건을 심문했다. 그리고 그 죽음이 과실치사로 사고였다고 판명되면, 그는 성 안에 거할 수 있는 자리를 얻고 “피의 보복자”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도피성은 원래라면 반드시 죽었을 사람을 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와 같다! 그분만이 인간의 혼에 구원을 확실히 보장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죄인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그는 즉시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다. 그의 죄는 영원히 용서받는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어떤 다른 신앙 체계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무엇을 하든지 스스로 구원받으려 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갈보리에서의 그의 죽음, 그의 부활, 그리고 그의 흘리신 피를 신뢰한다면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 확실하다! (롬 10:9-10; 롬 10:13; 요 5:24) 그 사람이 성읍 안에 머무는 한 그는 안전했다. 그는 심판의 날까지, 그리고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 그곳에서 살 수 있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과실치사자는 두려움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도 구원을 위해 우리의 혼을 주 예수께 맡길 때 동일하게 보호를 받는다! 도피성 안에 있던 사람과는 달리, 우리는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요 10:28-2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심판의 날이었다. 이제 그 날은 영원히 지나갔고, 우리는 도피성 안에서 안전하다. 나는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안에서 안전하다. 그분이 살아 계시는 한 안전한데, 그분은 영원히 살아 계신다(히 7:25; 계 1:18)! 우리가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인가!
도피성은 그곳으로 도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혼의 필요를 충분히 채우시는 분이시다. 당신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든지, 죄의 깊이가 어떠하든지, 마음이 얼마나 완악하든지, 혹은 주께 나아오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 있든지 간에, 그분은 그 모든 것보다 크신 분이다! 그분은 당신의 혼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분은 결코 누구도 거절하지 않으신다(요 6:37). 그분의 능력은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 누구도 그것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계 22:17).
하나님께서는 여섯 개의 도피성을 마련하셨다. 요단강 동쪽에 세 곳, 요단강 서쪽에 세 곳이 있었다. 이 성읍들은 어디에 있든지,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과실치사자가 이스라엘 사람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관계없이, 그를 위해 열려 있는 도피성이 있었다.
그 옛 도피성들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역시 모든 사람에게 열려 계신다. 구원의 계획은 단 하나의 조건만을 요구한다.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은 죄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인정할 수 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당신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알고 믿을 수 있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피의 보복자”를 피해 도망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예수께로 달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성읍들이 온 나라에 골고루 배치되어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용 가능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있었다. 이 성읍들 대부분은 산 위에 세워졌다. 고대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들은 흰 석회암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햇빛을 받으면 빛나 보였다. 밤에도 달빛 아래에서 잘 보였다. 멀리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철저히 준비되어 있었다. 도피성에 도착하는 사람이 반드시 안전을 얻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길이 항상 열려 있었다. 제사장들은 이 성읍으로 가는 길이 막히지 않도록 항상 정비했다. 장애물이 없도록 유지하여 여행자가 쉽게 갈 수 있게 했다. 성문이 결코 닫히지 않았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도피성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방향이 분명했다. “미클랏(Miklat, ‘피난처’라는 뜻)”이라는 히브리어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명확히 가리켰다. 그곳에 가는 길을 헷갈릴 이유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도피성처럼,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접근 가능하다. 산 위에 있는 성읍처럼, 그분은 지친 나그네가 볼 수 있도록 드러나 계신다. 그분께로 가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분 쪽에는 아무 장애물이 없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죄 자체가 그분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길은 이미 열려 있다! 다만, 불신앙과 교만이 스스로 그 길을 막을 뿐이다.
피난처를 아는 우리는 길과 울타리로 나아가 그분께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입장과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께로 가는 길을 가리켜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을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로 인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