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 없이 걷는 길은 막연하다. 이 길로 걸어 갈 때,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에 사람들은 최대한 실패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 결과가 증명된 길로 가고자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그 증거를 가진 이들을 찾아간다. 수험생들은 수능이나 각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들의 방법을 묻는다. 부유해지기 원하는 자들은 뛰어난 성공을 이룬 사업가나, 투자의 귀재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래서 이미 성공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의 방법을 자신들에게 적용함으로 실패확률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칭찬을 받고, 많은 상과 유업을 받는 것이다. 본문에는 자신들의 삶을 통해 훌륭한 간증을 남긴 성공의 증거들이 있다. 본문에 나오는 세 명의 인물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아벨,에녹 그리고 노아.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믿음에 대해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증거를 지녔다. 이들이 믿음에 대해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었던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말씀을 통해 잘 살펴보고 이를 실천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삶 또한 하나님께 좋은 평판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믿음으로 나아가지만 더욱 확신 가운데 의심없이 나아갈 수 있다.
증명된 믿음의 결과를 보고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경배를 드리고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본문4절)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배를 드린 최초의 인물이었다. 아벨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리는 경배에서 “A”학점을 받은 우수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께 바쳤고,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을 인정하셨다.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다. 아벨이 바친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그가 치던 양무리에서 바친 살진 어린양과 그 피였다. 아벨은 자신의 부모인 아담과 이브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바쳐야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창3: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물의 가죽으로 옷들을 만들어 입히셨다(창3:21). 죄들을 가리기 위해 생명의 피가 흘려져야만 했던 것이다. 이를 안 아벨은 자신이 치던 양의 피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 결과로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 인정됐다. 그의 믿음은 증명됐고, 그 결과 증거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에 적용할 수 있다. 아벨이 바친 피는 동물의 피였다. 이는 하나의 모형이었다. 아담과 이브를 옷입히기 위해 흘려진 짐승의 피부터 본문의 아벨의 제사, 유월절 어린양의 피, 율법시대 때 셀 수 없이 많이 흘려진 짐승들의 피는 모두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바로 십자가에서 세상죄를 제거하기 위해 흘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다. 이 피는 동물의 피와는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고 영원한 효과를 지닌 보혈이다.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3,14)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로 입증되었다면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드리는 경배를 하나님께서 왜 받지 않으시겠는가? 왜 인정하지 않으시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드리는 것이라면 확신을 가져도 된다. 그 경배는 하나님께서 받고 계신다. 이미 아벨을 통해 증명된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카인의 예물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결과는 역시 정해져 있다. 카인은 그 결과를 이미 증명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물도, 그 경배를 드리는 자도 받지 않으신다. 카인은 땅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농부였다. 자신 나름대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보기에 최상의 것들을 바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거부하시자, 그는 매우 분노하고 감히 하나님 앞에 그 안색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카인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이미 저주받은 땅에서 무언가 선한 것을 발굴해보려는 노력이었다. 육신적인 행위였다. 오늘날에도 카인의 예물을 하나님께 가져오려는 수많은 경배자들이 있다. 자신의 행위와 노력, 전통들과 경건하고 금욕적인 생활, 자기 의, 종교적인 행위 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아벨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다.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자신이 드린 제사의 결과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을 믿고 구원받으라. 날마다 그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 보혈에 의지하여 경배드리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늘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헛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것이다.
증명된 믿음의 결과는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둘째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계시다는 확신을 갖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수많은 성도들이 성경에 나오지만 본문의 에녹은 그 “증거”를 가진 특별한 인물이었다(5,6절).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바로 셋째 하늘로 데려가셨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데, 예수님께서조차 죽음을 경험하셨고, 불병거를 타고 올라간 엘리야도 언젠가 죽음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시키신 사람들도 다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성도들을 예표하는 특별한 인물이다. 성도의 소망은 항상 에녹처럼 휴거되는 것이며, 에녹처럼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 해드리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려 올라가는 인생, 정말 최상의 인생이 아닌가! 에녹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우리도 가진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다는 확신과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에녹이 가졌던 믿음은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었고, “그분께서는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믿음이 아니다. 이 단순한 두 가지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삶이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알 수 있다. 성도가 에녹처럼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늘 생각하고 믿으며, 두려워하고, 그분께서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믿으며 열심히 그분을 찾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에녹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놓여져 있다. 왜냐하면 에녹은 이따금씩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양심의 인도로 하나님과 동행했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두 귀로 듣는 음성보다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확실한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의 형태로 거하고 계시기에 가장 가까이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구약성도들처럼 특정한 상태, 특정한 공간에서 아주 제한된 조건 내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주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이들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설령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다고 해도 언제든지 어린양의 보혈에 의지해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겠다는 약속까지 주셨다(요일1:7,9).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 하나님의 말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늘 동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선물처럼 우리에게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는가? 당신도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 에녹은 자신의 믿음으로 증명했고, 그 결과 증거를 갖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확신을 가져도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성도 바로 당신이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특별한 은혜를 입는 성도가 될 것이다.
증명된 믿음의 결과는 확신을 준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7절)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 앞서 살펴 본 에녹과 같이 노아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 그가 하나님께 들은 것은 세상의 물로 인한 심판이었다. 그것은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의 일이었음에 분명했다. 노아도, 노아의 먼 조상도 경험해보지 못한, 실로 사람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심판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했다. 믿음이란, 히11:1의 정의에 따르면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의 일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노아는 말씀에 두려움으로 떨었고, 순종하여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에 착실히 순종했다. 심판을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업을 완수했다. 마침내 방주가 완성되고, 온 세상은 물로 인한 심판으로 멸망했지만, 방주에 타고 있었던 노아를 포함한 여덟 혼은 구원받았다.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었을 때 받았던 세상의 조롱소리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비를 보지 못한 세상에서 물로 인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거대한 배를 짓는 노아에게 세상은 굉장한 조소와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노아는 미쳤다고, 광신자라고 숱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결국 방주를 완성했다.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하나님의 경고에 두려움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두려워했고, 그 결과 구원받았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록 보지 못한 일들일지라도, 미래의 일일지라도, 상식적으로 믿기 힘들지라도 이루어진다는 증거를 가진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에는 믿음으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대홍수가 일어나 구원받았을 때 노아의 믿음은 증명되었고 그 결과를 오늘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노아의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믿음은 그가 의의 상속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의 믿음 또한 노아의 믿음과 유사하다. 우리 또한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두려워하고, 그 일들을 실제로 가져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미래에 있을 일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가올 일들에 대한 경고를 주셨다. 세상은 사라질 것이며, 모든 것은 썩을 것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죄인은 지옥으로 던져저 영원히 불탈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장차 일어날 휴거와 대환란, 재림, 그리스도의 심판석, 어린양의 혼인식, 천년왕국, 온 우주적인 불심판, 새 하늘들과 새 땅에 대한 “아직 보지 못한” 일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고 있다. 우리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경고를 두 귀로 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욱 우월한 것이 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헷갈리지도, 마음과 감정상태에 따라 흔들리지도 않고, 영원히 기록된,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기록으로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는 이뤄졌다. 예언은 성취되었다. 노아는 이전에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사례를 알지 못했음에도 믿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성경에 이미 이뤄진 예언의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노아의 홍수를 포함하여 예수님의 초림, 공생애, 죽으심, 부활하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옴, 재림의 징후들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 이 세상의 악함이 노아의 날들이나 롯의 날들과 같아지는 것 등 성취된 예언의 “데이터”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본다면 보지 못한 미래의 것이라도 이뤄질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결코 노아의 믿음보다 뒤쳐질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세상은 믿음을 가진 이들을 여전히 조롱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왜 섬기냐고, 왜 일요일마다 그 귀한 시간에 꼬박꼬박 교회에 가느냐고, 왜 증명할 수도 없는 신을 믿는데 당신의 인생을 다 거느냐고, 그냥 적당히 교양인으로 믿으면 안되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임을 기억하라! 결코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실체가 있는것, 증명될 수 있는 것, “진짜로 존재하는 대상”을 믿고 있음이 확실하다!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로워졌는가? 하나님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근거로 나아가 경배드리는 경배자인가? 하나님과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고 있는가? 그분과 동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언된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미 그 믿음은 증명된 결과를 가지고 있다. 그 믿음을 따르는 당신의 결과 또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보상과 상속을 받을 것이다!
곧 부산성경침례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그들이 하나님께로 이겨온 혼들이 동시에 사라졌다는 “실종경보문자”가 모든 부산시민들의 핸드폰에 동시다발적으로 울릴 것이다. 그날이 반드시 다가올 것이며,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위로 올라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동행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니,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공동상속자가 될 것이다. 자, 이런 영광스러운 미래를 향해 더욱 확신이 찬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