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16절의 약속은 여전히 13절에 나오는 땅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이 “믿음에서 난 것”이기 때문에 은혜는 그 약속을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씨인 유대인들(“율법에 속한 자들”)과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인 그리스도인들(“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 모두에게 확대한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아브라함의 영적인 씨에게 성취되는데,
그때 그들은 “왕들과 제사장들”로서 “땅 위에서 통치”하게 된다(계 5:10).
“그는 우리 모두의 아비라.”
아브라함은 구원받은 이방인들로 구성된 영적인 민족(벧전 2:9)의 영적인 조상이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게 하였노라.” 함과 같으니) 그가 믿은 그분, 곧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니라.
창세기 17:4–5을 인용한다.
“많은 민족들”에는 이스라엘, 유다, 에돔, 미디안, 아랍인들 등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거룩한 민족”도 포함된다.
“그가 믿은 그분, 곧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니라.”
생식 능력에 관한 한 아브라함은 육체적으로 죽은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그들의 몸의 생식 기능을 다시 살리셔야 했다.
18 그가 소망이 없는데도 소망 가운데서 믿었으니 “네 씨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약 백 살이 되고서도 자기 몸이 이제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도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였느니라.
20 그는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느니라.
22 그러므로 그에게는 믿음이 의로 여겨졌느니라.
믿음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며, 불신이 섞인 약한 믿음에서 시작하여 의심이 없는 강한 믿음으로 나아간다.
⑴믿음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믿음이다.
18 그가 소망이 없는데도 소망 가운데서 믿었으니 “네 씨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지만,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소망할 만한 근거가 없고 아무런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소망한다.
“소망이 없는데도 소망 가운데서 믿었으니”
아브라함이 바로 그러했다.
그는 자기 몸이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창 17: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고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울부짖으며 눈물로 말하기를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하더라.”(마가복음 9:23–24)
구원은 믿음의 양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 달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를 향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 믿음이 오직 그분께만 놓여 있는 한 사람을 구원할 것이다.
⑵믿음의 다음 단계는 중간 단계의 믿음이다.
19 그가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약 백 살이 되고서도 자기 몸이 이제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도 죽은 것으로 생각지 아니하였느니라.
20 그는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이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계속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하라.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께서 점점 크게 보이게 되어 마침내 당신의 문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될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나 그분의 능력과 역량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뜻 안에서 당신이 그분께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이든 행하실 능력과 역량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당신은 믿음을 통하여 그 능력과 역량에 접근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적게 믿을수록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행하시는 일도 적어질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주실 것이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그 사람은 주께로부터 어떤 것이든 받으리라 생각하지 말라.”(약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의심이 섞여 있는 약한 믿음에서부터 의심으로 인해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중간 단계의 믿음이다.
아직 강한 믿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약한 믿음도 아니다.
⑶강한 믿음의 단계이다.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느니라.
따라서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의심은 사라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전혀 의심하지 않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구원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약한 믿음도 누구든지 구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장하고 승리하기 원한다면 약한 믿음을 넘어서야 한다.
23 이제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우리들 때문이기도 하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을 믿는 자들이라.
25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드려지셨고 우리의 의롭게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로마서 4장 전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신약 성도들을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되어 왔다.
아브라함의 구원은 우리의 구원(신약의 구원)과 동일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구원에 대한 모형(type)이다.
로마서 4장의 마지막 세 구절에서 바울은 바로 이 모형론을 사용한다.
아브라함에게 의가 전가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는 것에 대한 모형이다.
그러나 그 조건은 달라졌다.
우리는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을 믿는”(24절) 때 하나님의 전가된 의를 받는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다는 사실, 곧 그분께서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드려지셨고”(25절)라는 사실을 믿을 때 그 의를 받는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의 빚이 완전히 지불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다는 사실, 곧 그분께서 “우리의 의롭게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25절)는 사실을 믿을 때 그 의를 받는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는 달리, 당신은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믿는 순간 의롭게 된다.
우리의 죄들은 제거되었다(요 1:29).
그러나 아브라함의 죄들은 제거되지 않았다(히 10:4).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