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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경침례교회 주보
제 444 호 2026년 7월 19일 주보

부산성경침례교회주보

주보 목차
오전성경공부
로마서 강해18
조도희 담임목사 | 로마서 3장 23절-26절
오전설교
성공한 인생
조도희 담임목사 | 디모데후서 4장 1절-18절
오후설교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
조도희 담임목사 | 사무엘상 18장 6절-14절
수요설교
아낌없이 주시는 아버지께 구하라
조경재 형제 | 마태복음 7장 7절-11절
오전성경공부

로마서 강해18

조도희 담임목사
로마서 3장 23절-26절
본문 말씀
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25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값없이(freely) 의롭게 되었음이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freely) 먹을 수 있으나(2:16).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freely) 마시게 할지어다.(요한계시록 22:17)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1. 의롭게 됨 (Justification)

사람이 실제로는 의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2. 구속 (Redemption) (24)

죄인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되사기 위해 지불된 대가이다.

 

3. 화목제물 (Propitiation) (25)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지불된 대가이다.

구속과 화목제물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구속에서는 대가가 지불된다.

화목제물에서는 그 대가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져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만족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신 대가에 완전히 만족하신다.

 

4. 죄 사함 (Remission) (25)

죄값이 당신의 계정에 적용되어 당신이 져야 할 빚이 용서되는 것이다.

 

5. 속죄 (Expiation)

죄를 제거하고 정결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일에 근거하여 죄가 단순히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제거된다.

 

6. 전가 (Imputation)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죄인에게 돌리시는 행위이다.

 

7. 중생 (Regeneration)

성령께서 죄인 안으로 들어오셔서 새로운 출생을 통해 새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행위이다.

성령께 반응할 수 있는 새로운 영이 죄인 안에 창조된다.

 

8. 화해 (Reconciliation)

서로 원수 되었던 두 당사자(당신과 하나님)를 화평 가운데 하나로 만드는 행위이다.

 

9. 영적 할례 (Spiritual Circumcision)

성령께서 그리스도인 안의 새 본성과 죄로 이루어진 육신을 분리시키시는 행위이다.

그 결과 육신 안에서 행해진 어떤 죄도 새롭게 창조된 영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10. 양자됨 (Adoption)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이시는 행위이다.

 

11. 성화 (Sanctification)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죄인을 따로 구별하셔서, 그때부터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들로 대하시는 행위이다.

 

12. 영화 (Glorification)

구원받은 죄인의 궁극적인 완성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같아지며, 그분의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유업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을 때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영화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다.

 

25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화목제물(propitiation)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세 번 나온다.

그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것이니라.”(요한일서 2:2)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요한일서 4:10)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그가 자기 혼의 고통을 보고 만족하게 되리라. (이사야 53:10-11)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 (이사야 53:10)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라는 표현은 네 번 사용된다.

첫째, 침례인 요한의 사역에서이다.

그는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회개의 침례(3:3)를 전파하였다.

둘째, 마지막 만찬에서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26:28) 고 말씀하셨다.

셋째, 사도행전 2:38이다.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이전에 지은 죄들은 창세기 3장부터 로마서 3장까지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죄들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구약의 죄들은 단 하나도 실제로 제거되거나(10:4), 완전히 깨끗하게 된 적이 없었다(34:7).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할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참아 주셨다.

그러다가 완전하고 유효한 단 한 번의 희생제사가 드려질 때, 곧 그리스도의 희생이 드려질 때, 그분의 의를 이미 용서받은 죄들에 적용하여 그 죄들을 제거하실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한 사람의 생애의 어느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26절 참조),

하나의 역사적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라는 표현은 이미 과거의 죄들이 용서되었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6:28은 로마서 3:25와 직접 연결되는 구절이다.

침례인 요한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침례를 통하여 자신들이 이미 회개했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침례를 받은 후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했다.

사도행전 2:38에서도 네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⑴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해야 했다.

⑵그들은 자신이 회개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침례를 받아야 했다.

⑶죄 사함은 이미 회개했을 때 이루어졌다.

침례인 요한의 경우와 동일하다.

⑷그렇게 한 후에야 성령을 받게 되었다.

(이런 순서는 사도 바울 자신을 제외하면 신약 전체에서 유일한 경우이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9:22)

그 피는 성막 기구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놋제단에서 흘려진 피였다(9:18-22).

그것은 송아지와 염소의 피(9:19)였다.

구약 율법 아래에서는 사람이 올바른 제사를 드리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10:4).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피는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것 이상을 이루었다.

그분의 피는 구약의 희생제사들을 완성하고, 이미 용서된 죄들까지 완전히 제거하였다.

이런 연유로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죄한 것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그 영원한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 ... 이제 그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죄를 없애시려고 세상 끝에 한 번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15, 26)

이것은 단지 신약의 교리가 아니다.

구약의 교리이기도 하다.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게 되지는 아니하리니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과 그 자손들의 자손들 삼사 대까지 미치게 하느니라. (출애굽기 34:7)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5절은 구약 성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의의 선포를 다루었다.

26절은 신약 성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의의 선포를 다룬다.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진술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 문제는 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의롭다고 선언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어떻게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면서도 여전히 자신은 의로우실 수 있었는가?

어떻게 자신의 거룩함과 진노를 자신의 은혜와 자비와 조화시키실 수 있었는가?

그분은 친히 내려오셔서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셨다.

그분은 사람이 살아야 할 의로운 삶을 사셨다.

그리고 사람의 죄와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짊어지셨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교환을 제안하셨다.

당신의 죄, 당신이 가야 하는 지옥, 당신의 자기 의를 그분의 완전한 의와 효력 있는 희생제사와 바꾸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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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인생

조도희 담임목사
디모데후서 4장 1절-18절
본문 말씀
1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곧 그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4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로 돌리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 6 내가 이미 제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고, 떠날 때가 이르렀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은 영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라고 말씀하신다. 믿음다운 믿음을 발견할 수 없고, 거짓 믿음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마지막 권면은 이 배교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 비결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믿음에 달려 있다. 올바른 믿음은 올바른 태도에 달려 있다.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님으로 배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본질은 믿음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묻히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다시 오심을 믿는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구체적인 삶을 말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성공적인 인생은 배교의 시대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첫 번째, 말씀을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1~8).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심판주의 말씀으로 받으라 (1). 바울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을 먼저 말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심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주 앞에서 말한다. 이것이 강단의 두려움이다. 오늘날 강단이 무너지는 이유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어떤 상황에서도 선포하라. 맡겨진 말씀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2-6). 좋을 때, 싫을 때, 환영받을 때, 배척받을 때 계속 전해야 한다. 노아는 120년 동안 의의 말씀을 전파했으나 회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전했다.

  말씀에 대한 약속을 믿으라(7-8).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후회가 없다. 면류관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배교자는 현재만 보나 신실한 성도는 면류관을 본다.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의 면류관이 나온다. 시험을 견뎌내는 자들과 순교자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다. “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2:10) 절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썩지 않을 면류관이 있다.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고전9:25) 신실한 목자들이 받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5:4) 그리고 구령자들에게 주어지는 자랑의 면류관이 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살전2:19)

 

성공적인 인생은 배교의 시대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 때문에 믿음을 버리지 말라 (9-16).

  데마처럼 떠난 사람 때문에 믿음을 버리지 말라. “데마는 이 현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10)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데마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도 교회 떠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람 때문에 예수님까지 버리면 안 된다.

  마가처럼 실패한 사람을 포기하지 말라. “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는 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니라.”(11) 데마는 1차 선교때 실패하였으나 지금은 그는 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니라.”고 말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회복인가. 교회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곳이다.

  알렉산더와 같은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구리세공자 알렉산더가 내게 많은 해를 끼쳤으니, 주께서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라. 너도 그를 경계하라. 그가 우리의 말에 심히 대항하였느니라.”(14-15) 알렉산더는 복음을 대적했다. 그러나 바울은 직접 보복하지 않는다.

  나의 편에 서지 않은 사람도 용서하라. “내가 처음 변호할 때에는 나와 함께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탓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노라.”(16) 예수님, 스테판, 바울 모두 같은 기도를 하였다.

 

  성공적인 인생은 배교의 시대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세 번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라. “그러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복음 전파가 온전히 수행되어 모든 이방인들로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려 하심이며, 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느니라. 주께서는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구해 내시고, 그의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호하시리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7-18).

  사람은 떠나도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하신다(17). 하나님께서는 맡기신 일을 반드시 이루게 하신다(17). “나를 통하여 복음 전파가 온전히 수행되어 모든 이방인들로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려 하심이며,”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살려두신 이유가 있다. 우리도 하나님이 살려두시는 이유가 있다.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까지 지키신다(18). 바울은 죽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더라도 주님이 안전하게 하늘나라까지 데려가신다는 것이다.

  맡겨주신 일을 죽기까지 신실하게 담당하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복음전파를 맡기셨다. 그 일을 완수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시고 힘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순간까지 돌보신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는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보호받는다(18).

 

  바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떠났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다. 알렉산더는 대적했다. 많은 사람이 바울을 버렸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다. 이제 곧 참수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원망이 나오지 않는다. 두려움도 나오지 않는다. 후회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고백은 이것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이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아 그분 앞에 엎드려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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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

조도희 담임목사
사무엘상 18장 6절-14절
본문 말씀
6 그들이 올 때, 즉 다윗이 그 필리스티아인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들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북들과 즐거움과 악기로 사울왕을 맞이하더라. 7 그때 여인들이 뛰놀며 서로 화답하여 말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이라.” 한지라. 8 사울이 매우 노하였으며 그 말이 그를 불쾌하게 했으므로, 그가 말하기를 “그들이 다윗에게는 수만을 돌리고 내게는 수천을 돌리니, 그가 가질 것이 왕국 외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9 그 날 이후로 사울이 다윗을 눈여겨보더라. 10 그 아침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령이 사울에게 임하여 그가 집 한가운데서 예언하였고, 다윗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사울의 손에 창이 있더라. 11 사울이 창을 던지며 말하기를 “내가 다윗을 창으로 벽에다 박으리라.” 하더라. 그러나 다윗이 두 번이나 그의 면전에서 피하더라. 12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사울로부터 떠나 다윗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더라.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에게서 떠나게 하여 천부장을 삼으니, 그가 백성 앞에서 나가고 들어오더라.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에 현명하게 행동하였으며, 주께서 그와 함께하시더라. 15 그러므로 사울은 다윗이 매우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더라. 16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들 앞에서 나가고 들어오기 때문이더라

명제 : 오해의 늪에서 헤어나오려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 요셉 모두 오해를 받은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오해를 받으면 마음이 무너진다. 특히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받을 때는 더욱 어렵다. 가정, 교회. 직장 어디에서도 오해는 발생한다.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은 오해를 받는 것이었다. 모세의 사역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의 사역 중 많은 부분 오해를 받았다. 본문의 다윗도 마찬가지로 사역이 시작될 때 오해를 받는다.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부터 가장 큰 오해를 받는다. 하나님의 사람은 오해를 피할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오해를 이길 수 있다.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오해는 선한 일을 행할 때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6-9).

  쉽게 다른 사람을 오해하여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착하고 단순한데 늘 섭섭한 것이 많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물을 깊게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영적 분별력인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단순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사물을 깊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자기 생각 안에 가둬 두고 단순하게 살아간다면 그 결과 늘 오해한다.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죄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사람과 사물을 깊이 볼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하라. 누가 말한다고 해서 금방 믿지 말라. 무언가를 들었다면 소화를 시켜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이해력이 넓은 사람이다.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착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착한 것에 반드시 지혜를 더해야 한다.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오해를 받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일을 계속하여 하여야 한다(10-11).

  모든 사건을 늘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늘 오해하며 오해당한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때로는 우연적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입은 해가 그의 좋은 의도에서 비롯될 수 있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가능하면 섭섭한 마음을 갖지 말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평생 그렇게 사셨다. 제자들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오해 받고 선한 뜻을 곡해받았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은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늘 오해하고 늘 서운해하고 늘 무엇인가를 캐내고 한다면 무언가를 잘못 믿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모든 것이 긍정적이 된다. 즉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이외에는 오해를 풀 방법이 없다. 모든 사람, 사물을 대할 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라(12-16).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해를 받았을 때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오해를 받을 때는 모두 무방비 상태가 된다. 오해를 정정하려 노력해도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경험을 한다. 상처는 더 깊어지고 상태는 더 나빠진다.

  다윗은 오해로 말미암아 생사를 건 도망을 해야 했다. 자신을 그렇게 박해한 사울에게 다윗은 복수하지 않았다.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이유였다. 다윗은 그 어느 때라고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믿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보상하는 하나님이심을 마땅히 믿었다. 사울로부터 받은 오해를 하나님께 맡겼다.

  엔게디 광야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죽이지 않았다.이것이 오해의 상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이다. 오해를 받았는가?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너무 안절부절하지 말라. 그러면 그럴수록 거미줄 같아서 더욱 옭아맬 뿐이다.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십 년간 다윗을 훈련시킨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였다. 십 년간 사울의 오해를 통하여 다윗이 앞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할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해, 통찰력, 능력을 위해 훈련시키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아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간섭하신다. 그 때를 기다리라. 내가 복수하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나 사람을 잃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면 사람을 얻을 수도 있다. 오해받을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아뢰고 맡기라.

  이 말씀의 원리를 따라 남은 평생 누군가를 오해하지 말라. 그리고 오해로 말미암아 받은 상처를 이 말씀의 원리에 따라 치유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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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7절-11절
본문 말씀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8 이는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자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기 때문이라. 9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1 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지 않겠느냐?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본문의 교리적인 적용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나, 신약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거듭난 성도에게 본문의 말씀을 적용하여 아름다운 영적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7,8절).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그러면 주실 것이고,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굉장히 당연한 법칙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구해야하고, 찾길 원한다면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문이 열리길 바란다면, 그 문 앞에 서서 두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찾거나, 열리길 원하는 이는 없다. 만약 누군가 필요한 것이 있는데 구하지는 않고 바라기만 한다면, 그는 평생 소원만 갖고 있을 뿐, 원하는 것을 절대로 얻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마치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와 같이 게으른 공상가일 뿐이다. 일반적인 자연법칙에서도 이는 당연한 것이어서, 입을 더욱 크게 벌리고 지저귀는 새끼 새가 어미새에게 더 많은 먹이를 받아 먹는다. 그리고 ‘우는 아이 젖 준다’라는 속담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간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계시는데, 구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세 가지 표현이 나온다. “구하다”,”찾다”, “두드리다.”이다.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길 바라는 소망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구하고,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했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방향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두드려야 하는 문이 나타났을 때, 그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구하다는 것의 영어 표현은 “Ask”이고, 찾다는 “Seek”, 두드리다는 “Knock”이다. 세 동작의 앞 글자만 따 오면 “ASK”가 된다. 즉, 구한다는 것은 구한 것을 찾고, 끈질기게 두드리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기도와 간구에 대해 말씀하신 자세는 결코 한 두 번 하고 마는 기도가 아니었다. 끈질기게, 그것을 응답받을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의 자세다. 본문의 평행구절인 누가복음 11장 9-13절의 문맥을 살펴보면 친구에게 빵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끈질긴 간청이 나오고 그 후 구하라는 말씀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탄원하는 과부여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눅18: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하라고 명령하시고, 구한자에게 주실것이며, 그는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8절에는 그 명령 이후에 그 명령에 따라 구한 자들이 나온다. 구한 자에게 주실것이라는 법칙에 따라 구한 자들은 성경 아주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증거하고 있는 응답의 간증을 통해 이를 더욱 강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구한 자들의 예로는 먼저 수넴여인을 들 수 있다.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된 이 훌륭한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잘 대접함으로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자, 이 여인은 가만히 집에 있으면서 절망에 빠지고 통곡하며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즉시 하나님의 사람을 쉬지 않고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사를 만났을 때, 그의 발을 붙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구했고, 찾았다. 그리고 두드렸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먼저 보내면서 그를 따라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주께서 살아 계시는 한, 또 당신의 혼이 살아 있는 한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말하며 끝까지 메달렸다. 그녀는 구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끝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린 훌륭한 예를 보여준다. 또한 예수님께 무시받고, 거절 당하고, 마침내 ‘개들’이라는 모욕을 받으면서 까지 자신의 딸을 위해 구하기를 멈추지 않은 수로페니키아여인 또한 훌륭한 간증을 말해주고 있다. 얍복여울가에서 날이 새기까지 하나님과 싸우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까지 절대로 하나님을 보내지 않고 붙든 야곱도 끝까지 구하고 두드린 자이다. 이 외에도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간구를 하나님께 간절하고 끈질기게 청함으로 응답받았다.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특별히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이 명하신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요16:24) 당신은 현재 구하는 자인가? 찾고 두드리는 자인가? ‘과거에’ 구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 내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는 것인가? 마땅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와 지나가 버린 시간으로 구하지 않고 있는 기도의 제목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것을 주시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한다. 구한 것을 찾아야 하고, 받기 위해 열어야 하는 문을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구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너희가 갈망하여도 얻지 못하고, 너희가 살인하고 갖고자 열망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얻지 못하니 이는 너희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약4:2) 필요한 것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하지 않음”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 두 번째로, 관계 속에서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9,10절)

  예수님께서는 구하면 받을 것이고, 구하는 자는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가지 비유를 말씀하신다. 역시 보편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그렇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는 없다. 아들이 빵과 생선을 달라고 하면 부모는 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식의 생명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것을 요구했을 때, 그것이 필요한 것이면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구하는 자”가 아니라, 구하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아들은 타인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빵과 생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빵과 생선은 아들의 생명과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먹을 수 없는 돌을 주거나, 죽이는 독을 갖고 있는 뱀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안다. 무엇이 자녀에게 좋은 것인지 “최소한의 분별력”은 지니고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합당한 요구에는 응답한다. 자신이 먹지 못해도 자식은 굶기지 않는 것이 부모다. 그러나 만약 자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나, 더 나아가 해로운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올바른 부모라면 그것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녀에게 “좋은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자녀가 빵과 생선을 구하지 않고 돌과 뱀을 구한다면 이를 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필요한 것을 구할 때, 반드시 응답하신다. 우리의 삶의 필요, 영과 혼의 필요를 놓고 간청하는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응답하셔야 할 책임이 있으시다. 그분께 아들로서 나아가 구하라.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원하는 것을 구하는 아이로 나아가라. 그분만을 의존하고 그분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아들이 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정확히 아신다. 그리고 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얼마나 필요하고, 또 ‘언제’ 그것이 필요한지 가장 정확히 아시고 공급하신다. 
  만일 아들이 빵을 구하지 않고 돌처럼 아무 쓸데없는 것들을 구한다면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기에 그것을 주지 않으신다.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세상의 것들을 쌓아두기 위해 구하는 것들을 왜 아버지께서 주시겠는가? 그것이 소중한 아들의 삶을 망쳐버릴 것을 다 아시면서 주실 리 없다. 또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에 기반된 정욕을 품고 구하는 것들을 아버지께서는 주시지 않는다. 그것은 죽이는 독이 가득한 뱀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이 위험한 것을 구한다면 절대 주지 않으신다. 구해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허락지 않고 계신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너희 정욕에다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3)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 세번째로, 약속의 기반 위에서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11절).    

  구하는 자는 받을 것이다. 구하는 아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두 법칙보다 훨씬 더 강한 확신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기반 위에서 구하는 자이다. 간절히 구하지만 못받을 수 있다. 간절히 찾고, 끈질기게 두드렸지만 결국 실패한 많은 인생들이 있다. 자녀라고 부모에게 구한 모든 것을 다 받는가? 부모의 능력이 제한될 수 있다. 그리고 부모의 분별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자식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자녀의 삶에 유익을 끼쳤는가? 부모의 생각으로 자녀를 위해 좋은 것을 주고 때로는 ‘강제로’ 주었으나 역효과를 낳아 자녀의 인격에 상처를 주고, 오히려 부모에 대한 증오를 품는 사례들도 있다. 부모가 정말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주었지만 실은 자녀에게 독을 준 경우도 있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약 17년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는 아이들의 호흡기 건강과 위생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쓴 부모들이 사용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게도 최소 7900명 이상의 피해자와 184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용한 ‘좋은 것’이 아이들의 폐를 죽이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처럼 인간 부모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좋은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에게 무엇이 좋은 것들인지 진정으로 아시는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을 아버지로 둔 자녀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돌보는 것은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발견된다. 아이들을 학대하고 방임하여 죽이는 부모들의 뉴스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들이 오히려 이 부분에 있어서 가르침을 주는 경우가 많다. 황제펭귄의 경우, 암컷이 먹이를 구하러 나가면 수컷이 영하 60도의 온도와 시속 200km의 강풍에서 알을 품는다. 암컷이 돌아오기 전에 새끼가 먼저 부화할 경우, 그 새끼에게 자신의 위장을 짜내어 새끼를 먹이는데, 이 과정에서 수컷의 체중은 50%나 감소한다고 한다. “벨벳거미”라는 거미가 있는데 이 거미의 암컷은 새끼들에게 자신이 사냥한 것을 소화시켜 먹인 후, 자신의 장기를 녹여 액체로 만든다. 그리고 새끼들로 자신의 죽은 몸을 먹게 한다. 말을 못하고 지성도 없는 동물도 자신의 새끼들을 먹이고 양육한다면, 악한 인간의 부모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수 있다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구하는 것에 좋은 것들로 채워주지 않으시겠냐고 묻고 계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자녀들의 요청에 늘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우리가 구하는 분은 단순히 구한 것을 줄 수 있는 대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물과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있는 부성애, 모성애에 제한되는 분도 아니다. 그분은 온 우주 가운데 단연코 가장 귀한 것을 이미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이런 귀한 약속을 주신 분께 우리는 나아가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자.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분께 나아가자. 우리의 아버지께는 좋은 것이 한량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곧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한량없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다(눅11:13). 구원과 영생, 구원의 영원한 보장, 확신, 구원의 기쁨, 속죄, 대속, 하나님의 말씀, 양자로 입양, 때에 따라 필요한 은혜와 자비, 모든 필요, 안전함, 보호하심, 생명, 건강, 가정, 지역교회, 선한 일로 불러 주신 특권, 경배자의 특권, 귀한 성도들, 유업과 보상, 믿음까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좋은 것들만 나열한다 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그분께서 주신 것이며 그분께서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 또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아들들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예비하시고 주길 바라고 계신다. 단지 그분께 구하라. 찾으라,두드리라. 주실 때까지 구하는 자가 되어 모든 좋은 것들로 풍성한 삶을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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