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19-20절은 구약 율법의 목적을 제시한다.
동시에 20절은 신약의 위대한 교리인 의롭게 됨(justification)을 소개한다.
구원의 관점에서 의롭게 됨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옳다, 또는 의롭다고 선언되는 법적 선언이다.
실제로 “의롭게 됨”라는 단어는 신약의 단어이며 로마서에서만 발견된다.
“이제 율법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인 줄 우리가 아노니”(19)
그들은 유대인들이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고(20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진 확신이었다(롬 2:17).
“이는 모든 입을 막고”(19)
율법은 유대인들이 자기 의를 자랑하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롬 2:19-23).
그러나 율법에 의해 정죄받는 것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다.
율법이 제시하는 완전한 기준에 자기 의를 비교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정죄받는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마찬가지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죄가 있게 하려 함이니라.”(19)
유대인들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받은 기록된 율법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이방인들은 자기 양심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둘 다 하나님 앞에 유죄이다. 인류는 자기 양심과 성경에 의해 정죄받는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제 이 말씀을 다음 구절들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될 것임이라.”(롬 2:13),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약 2:21),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약 2:25),
“악인은 정죄하시어 그의 행실을 그의 머리로 돌리시며, 의인은 의롭다 하시어 그의 의대로 그에게 베푸소서.”(왕상8:32, 대하6:23)
“이는 내가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을 것임이라.”(출 23:7).
구약에서는 주님께서 “의로운 자”와 “악인”이라는 용어를 신약에서 사용하시는 방식과 다르게 사용하신다는 것이 분명하다.
구약에서 “악인”은 어떤 면에서든 가끔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습관적이고 중대한 율법 위반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의로운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옳은 일을 행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느니라.”(출 20:6).
그것은 신약의 그리스도인이 선한 행위에 대해 믿는 바와는 정확히 반대이다(엡 2:8-9).
성경이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라고 말할 때, 그것은 구약에서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것 자체만으로는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했고, 또한 그것을 행해야 했다.
곧 믿음과 행위가 함께 있어야 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20)이며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약 2:17)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아무 믿음도 없는 행위 역시 죽은 것이다.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20)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성취하실 때까지 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 어찌하여 율법을 섬기느냐? 그것은 범법함 때문에 더해진 것이니, 약속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라.”(갈 3:19).
그리고 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우리의 지도교사”가 되었다(갈 3:24).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는”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의”는 로마서의 위대한 주제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그들(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 (로마서 10:3-4)
“그러나 너희는 그분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주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0)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말할 때, 그는 그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의가 “율법 없이”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바울은 또한 이 율법 없이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4장에서 사용하는 두 가지 예 가운데, 아브라함은 율법에서 가져온 예이며(롬 4:3),
다윗은 선지자들에서 가져온 예이다(롬 4:6-7).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에는 예언과 사례들이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다.
22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21-22절에서 “하나님의 의”는 ⑴“율법 없이” 주어지는 것이며, ⑵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것이고, ⑶구약성경에서 “증거된” 것이며, ⑷“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⑸“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차별이 없느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유죄이며, 둘 다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다.
만일 유대인이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 한다면, 그는 이방인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
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값없이(freely) 의롭게 되었음이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freely) 먹을 수 있으나”(창 2:16).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freely) 마시게 할지어다.”(요한계시록 22:17)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