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교만은 영적 거장의 마지막 시험이다.
밧세바와 간음을 범했던 다윗이 이제 노인이 되었다. 그의 삶에서 중년의 정욕은 다른 죄들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신앙생활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육신을 어느 정도 다스리게 되고 죄를 초월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 오늘 유혹하는 죄들이 나이가 들어서는 더 이상 큰 유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여 또 다른 수많은 죄들이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영적 거장인 다윗이 인생 마지막에 직면했던 문제는 교만이었다. 교만은 영적 거장의 마지막 시험이다.
교만은 영적 거장의 마지막 시험이다. 그 교만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신뢰하게 한다(1-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음을 매우 분명하게 말해 준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도 그들을 치도록 움직이셨다고 기록한다. 역대상 21장은 이 사건을 기록한 평행 본문이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대상21:1) 즉, 이 사건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징계를 수행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사용하여 다윗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셨다. 어떤 이유였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고, 사탄이 다윗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다윗은 분노에 휩싸인 채 백성의 수를 세는 죄를 범하였다.
다윗은 자기 휘하에 얼마나 많은 군사가 있는지 확인한 뒤, 그 숫자를 보며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다윗이 교만한 마음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교만은 언제나 죄의 뿌리이다. 교만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하지 않는다. 교만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뜨릴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너뜨린다.
요압은 왕의 명령을 듣고 다윗에게 이렇게 반대한다. “왕께서 왜 이런 일을 하시려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을 실제보다 백 배나 강한 백성처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백성이니,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주님을 신뢰하면 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충고였다. 그러나 왕의 명령은 장군의 충고보다 우선했다. 결국 다윗의 명령은 그대로 시행되었고, 다윗은 선한 충고를 거스른 채 죄를 범하였다.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의 선한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외면한 채 자기 길을 고집한다. 그러한 행동의 결과는 결국 재앙일 수밖에 없다.
교만은 영적 거장의 마지막 시험이다. 그 교만은 반드시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한다(5-16절).
교만은 양심의 책망의 고통을 치르게 한다. “백성의 수를 센 후 다윗이 마음에 가책을 받은지라, 그가 주께 말하기를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크게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 이제 내가 간구하오니, 주의 종의 죄악을 제하여 주소서. 내가 매우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10) 요압이 인구조사의 결과를 보고하자 다윗은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죄에 대한 책망이 그의 마음을 깊이 찔렀던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가장 놀라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령의 책망(죄의 깨달음)이다. 죄를 생각하는 순간이든, 행동으로 옮긴 직후이든, 곧바로 성령께서 내 마음을 책망하신다. 이러한 책망은 방황하는 자녀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단계이다(히브리서 12:5-11). 책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장 큰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교만은 악을 선택해야 하는 고통을 준다. 다음 날 선견자 갓이 다윗을 찾아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자신이 받을 징계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이 7년 동안 기근을 겪는 것, 3개월 동안 원수들에게 패배하는 것, 3일 동안 전염병이 나라를 덮치는 것 가운데 다윗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스라엘 백성은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죄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갈라디아서 6:7-8).
징계가 가져온 고통이 따른다. “그리하여 주께서 아침부터 정해진 때까지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보내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들 칠만 명이 죽으니라. 천사가 그의 손을 예루살렘으로 뻗쳐 멸망시키려 하였을 때, 주께서 그 재앙에서 스스로 돌이키시고, 백성을 멸한 그 천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제 네 손을 멈추라.” 하시니 주의 천사가 여부스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더라.”(15-16). 불과 사흘 만에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7만 가정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겼다. 나라 전체가 충격과 애통함에 휩싸였다. 한 사람의 교만한 죄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결코 다 알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죄에는 언제나 결과가 따른다.
어떤 경우에는 죄를 지은 당사자만 그 결과를 감당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고통을 겪는다.
교만은 영적 거장의 마지막 시험이다. 그 교만은 회개로만 치유될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사도행전 13:22)이라 불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죄를 자백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주께 고하여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악하게 행했나이다.”(17) 다윗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아주 큰 죄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했다.
이것은 오늘 우리 모두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교훈이다. 그렇다. 우리도 죄를 짓는다. 때로는 매우 큰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 우리의 본성은 그 죄를 감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모든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 양들이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청하오니,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더라.”(17)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교만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군사의 숫자에 관심이 없다. 지난 승리들을 자랑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죄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보게 되었고,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실패했을 때 바로 그 자리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죄에 대해 정직해질 때,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위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죄를 숨기려 하지 않게 된다. 죄의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죄인이며, 그 죄를 처리해야 할 사람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정직해질 때 우리는 죄를 버리게 되고, 죄가 우리 삶에 가져온 결과까지도 겸손히 받아들이며 해결하려 하게 된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축복하시고, 용서하시며, 회복시키신다.
죄를 범한 후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려면 언제나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18-25).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어떤 타작마당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다윗이 그곳에 이르자 타작마당의 주인은 그 땅과 소를 모두 왕에게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는 참된 예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결코 값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타작마당과 소를 값을 치르고 산 후 제단을 쌓아 희생 제사를 드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고, 재앙은 그치게 되었다.
믿음은 마치 타작마당과 같다. 타작마당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듯이, 참된 믿음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것들을 걸러낸다. 믿음을 순종으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그러나 아무런 희생도 요구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아무런 희생도 없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하는 대가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된 습관을 버리는 희생일 수도 있다. 죄를 범한 후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려면 언제나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복을 누리는 삶은 결코 값싼 삶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 하나님을 향하여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그분의 복은 기대할 수 없다.
오늘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지금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가 있는가? 주님 앞에 나아가, 예수님과의 동행을 가로막고 있는 죄나 영적인 문제를 정직하게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는가? 또한 하나님께서 이 교회 가운데 계속 역사하시고 복을 부어 주시도록, 여러분은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경험하라. 그분은 상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