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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경침례교회주보
제 445 호 2026년 7월 26일 주보

부산성경침례교회주보

주보 목차
오전 성경공부
로마서 강해 19
조도희 담임목사 | 로마서 3장 27-31절
오전설교
바른 길을 걷는 삶
조도희 담임목사 | 갈라디아서 5장 16절-25절
오후설교
특권, 칭찬, 책망
조도희 담임목사 |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수요설교
녹두나무 밭을 지키라
조도희 담임목사 | 사무엘하 23장 11절-12절
오전 성경공부

로마서 강해 19

조도희 담임목사
로마서 3장 27-31절
본문 말씀
27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29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시고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물론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정녕 할례자도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하고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니라. 31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27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방금 살펴본 로마서 32127절의 내용을 고려해 볼 때, 누가 자기의 선한 행위들을 자랑할 여지가 있겠는가?

전혀 없다. 자신의 의를 자랑할 자리는 없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며 그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니이다. 이는 죽임당하셨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5:9)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라고 하더라.”(5:12)

 

구원에 관한 한, 모든 자랑은 완전히 배제된다.

성도가 자랑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하여 아무 육체라도 그분의 면전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주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와 같이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고전1:29-31)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6:14)

 

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분을 통하여 너희에게 죄들의 사함이 선포되었으며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믿는 자는 모두 그분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이니라.”(사도행전 133839)

 

의롭게 되는 것은 그분을 통하여이루어진다.

그것은 믿는 자는 모두에게 해당되며, 그들은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의롭게 된다.

어떠한 종류의 행위도 구원을 얻는 데는 아무 효력이 없다.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로마서 4:5)

만일 당신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자신이 행한 어떤 종류의 선한 행위라도 의지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의는 당신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유일한 사람은 행하지 아니하는사람이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기 위해 자신이 행하는 어떤 선한 행위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2:10), 이 말씀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8-9) 이후에 나온다.

 

29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시고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물론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정녕 할례자도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하고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니라.

31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당신이 그리스도를 신뢰한다고 해서 율법을 무효로 만든 것은 아니다.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며, 여전히 진리이고, 여전히 살아 있고 능력이 있다.

당신은 당신을 대신하여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한 분에게 믿음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을 지키셨고, 그 결과 우리가 그분의 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율법이 옳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만일 율법이 옳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지키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로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새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힘쓰며, 자신에게 해당되는 계명들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삶에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모시려고 힘쓸 것이다.

사물이나 재물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혀를 절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비록 우리는 안식일 아래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하루를 구별하여 드린다.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서 613절에서 다시 확인한 것처럼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할 것이다.

또한 구원받기 전에는 없었던 방식으로 우리의 미움과 정욕을 억제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자신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또는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짓말과 속임수와 탐심이 그분과의 교제를 깨뜨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주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바르게 살려고 힘쓴다(14:15; 13:10; 2:10, 4:1432; 요한일서 1:7).

 

오전설교

바른 길을 걷는 삶

조도희 담임목사
갈라디아서 5장 16절-25절
본문 말씀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육신의 정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두 가지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13-14에서 주님은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을 통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반면, 넓은 길에 머무는 사람은 지옥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에 이를 수 없다(요한복음 5:24).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잘못된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성경이 말하듯 우리는 분명히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지만, 잘못된 길을 걸을 때에는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은 상태, 곧 무기력하고 열매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반대로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에서 열매를 맺고 효과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10에서 말씀하신 풍성한 생명을 실제로 누리는 삶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영적으로 실패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육신을 따라 살면 영적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느니라.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17-21).

  구원받은 사람이 육신적인 삶을 살면 파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한다. 당신의 삶 속에서는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15-25에서 이 영적 싸움을 고백했다. 육신은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성경을 공부하지 못하게 하며,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게 하고, 믿음 안에 신실하게 살지 못하게 하며,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성도의 삶을 방해하려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이다.

  육신은 어떤 죄라도 범할 수 있다. 사람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죄는 물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죄까지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다. 요즘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절대로 그런 일은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베드로는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넘어졌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지만 육신을 따라 행했을 때 큰 죄에 빠졌다. 육신은 예외 없이 어떤 죄든 저지를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로마서 7:18).

  육신은 심판을 받도록 정해져 있다.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 육신적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린도후서 5:10)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에 관해 설명하리라.”(로마서 14:12) 또한 이 땅에서 주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히브리서 12:6-8, 요한계시록 3:19). 사탄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고린도전서 11:31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 자신을 먼저 살피고 회개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다.

  성도가 때때로 이런 죄에 넘어질 수는 있다. 그때마다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요한일서 1:9).

 

  주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을 따라 살면 영적 승리와 열매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22-23).

  구원받은 사람이 성령과 동행하면 기쁨의 삶을 살아간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정욕을 이기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육신의 정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육신의 인도를 받든지, 성령의 인도를 받든지 둘 중 하나이다. 어느 쪽이 승리하는가는 우리가 누구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이 승리할 수도 있고, 성령께서 승리하실 수도 있다.

  우리가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허락하기만 하면, 성령께서는 육신을 이기게 하신다. 고린도전서 10:13은 우리가 삶 속에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여전히 선택할 책임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에게 흔히 닥치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우리는 유혹을 불러오는 장소, 사람, 물건, 영상, 음악 등 무엇이든 피해야 한다. 그런 것들과 장난치며 가까이하면 결국 그것에 넘어가게 된다. “사람이 가슴에 불을 품었는데 옷이 타지 않을 수 있겠느냐?”(잠언 6:27).

  성령께서는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신다.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느니라.” 우리가 성령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성령 안에서 행할 때에는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예수님에 대해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 해도, 당신의 삶이 그분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에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제거된다. 우리 삶에서 누구에게 자신을 내어 맡길 것인지는 결국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 삶에서 승리하게 하신다. 육신은 행위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인간이 애써 만들어 내는 노력의 삶(능동적 삶) 이다(잠언 13:15). 반면 성령께서는 열매를 맺게 하신다.

  이것은 안식의 삶(수동적 삶) 이다. 열매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맺힌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 포도나무의 생명이 흘러 들어오기만 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힌다.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의 삶에서도 성령께서는 언제나 열매를 맺게 하신다(마태복음 7:20). 또한 이 열매들은 예외 없이 모든 성도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하는 성품들이다. 악한 행위가 잃어버린 사람의 특징인 것처럼, 성령의 열매는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불신자가 진정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성령의 열매를 모두 소유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성품이 언제나 성도의 삶 속에 함께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길 때만 가능하다.

 

  주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끝까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을 그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하자.”(24-25).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육신과 장난하는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죽은 것과 장난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성령께 자신을 내어 맡기면 성령께서는 육신을 이기게 하시고 승리를 주신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는 살아 있고, 육신에 대해서는 죽었다는 사실을 삶으로 풍성하게 증거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면, 성경이 구원받은 사람이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바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곧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 구원받았다면 당신은 이미 성령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하다. “너희는 너희가 된 존재답게 살아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인가?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스스로 너무 어렵게 만든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기만 하면 영적인 싸움은 끝이 난다. 승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거할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해 보라. 당신은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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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칭찬, 책망

조도희 담임목사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본문 말씀
14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여행하면서 자기의 종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으니라. 15 그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곧 여행을 떠났더라. 16 그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17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더라.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겨 놓았더라.

  “청지기 직분은 어떤 것을 보호하고 책임 있게 관리하는 일이나 역할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한 청지기 직분을 감당하기를 기대하신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신 재능과 은사와 자원과 기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맡은 청지기이다. 선한 청지기 직분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지만, 악한 청지기 직분에는 책망이 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주님께서는 맡겨진 것에 신실한 종에게 보상하시고, 그것을 등한히 한 종을 책망하신다. 당신에게 맡겨진 것은 주님의 것이므로 신실하게 사용해야 한다(1418).

  이 비유는 한 부유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떠나기에 앞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세 명의 종을 불러 자신의 재산 일부를 맡긴다.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맡길 액수를 결정하였다.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남기셨다. 그러나 비유 속의 주인이 종들에게 언제 돌아올지 말하지 않은 것처럼, 주님께서도 자신의 재림의 날을 알려 주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떠나시면서 자신의 일을 종들의 손에 맡기셨다.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은사와 재정적 자원과 영적 기회와 여러 가지 복을 상징한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과 은사와 돈, 그리고 당신이 가진 모든 것과 당신 자신은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도록 당신에게 맡겨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주신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함이다. 이 비유의 종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주인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타고난 재능이든, 영적 은사이든, 섬길 기회이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주었다는 말씀은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보여 준다. 첫째, 주인은 자신의 종들을 잘 알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하고도 친밀하게 아신다. 당신의 강점과 약점, 은사와 재능과 능력을 모두 아신다. 둘째, 주인은 각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 분량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능력에 맞게 재산을 맡겼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가장 잘 사용하시는 방법을 아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신실함에 따라 책임을 맡기신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곳에서 문을 열어 주신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이 그것으로 장사하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맡겨진 돈을 투자하였고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하였다. 두 사람 모두 맡은 돈을 두 배로 늘렸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네 달란트를 주인에게 가져왔다. 액수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100%의 수익을 올렸다. 그들이 번 돈은 서로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주인의 돈을 관리하는 데 있어 주도성과 신실함과 지혜를 보여 주었다. 다시 말하면 맡겨진 것을 충성스럽게 그리고 신실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장사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숨겨 두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과 자원과 기회를 지혜롭게 사용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주님을 섬기는 일에 투자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크게 사용하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받은 복을 그냥 움켜쥔 채 살아간다. 그들은 찬양도 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예배도, 전도도, 설교도, 헌금도, 봉사도 하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 외에는 아무것에도 투자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의 삶에는 남는 것이 거의 없다. 많은 성도들에게는 아주 작은 투자조차 너무 힘든 일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은사와 재능과 자원과 기회를 맡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것을 자신의 왕국을 위한 일에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투자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빚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없는 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신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맡겨진 것에 신실한 종에게 보상하시고, 그것을 등한히 한 종을 책망하신다. 당신이 맡겨진 것에 신실하면 주님의 칭찬과 보상을 받게 된다.한참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계산을 하였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나와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 나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보소서, 그것들 외에도 내가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라고 하더라.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하더라.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나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 나에게 두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보소서, 그것들 외에도 내가 두 달란트를 더 벌었나이다.’라고 하니,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하더라.”(19-23)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던 주인이 예기치 않게 돌아왔다. 그는 종들을 불러 자신이 맡긴 돈으로 무엇을 하였는지 결산하도록 요구하였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나아와 자신이 그 돈을 장사하였다고 주인에게 보고하였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나아와 자신이 그 돈을 투자하였다고 주인에게 보고하였다. 주인은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

  주인이 이 종들에게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라. 주인은 먼저 그들의 훌륭한 인품을 칭찬하였다. 그들은 그러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주인에게 신실하고 훌륭한 섬김을 드릴 수 있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이 땅에서 자신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들을 칭찬하실 것이라는 진리는 참으로 놀랍다. 우리가 가장 잘 섬긴 날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도 그와 같이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을 하고 나서는 우리는 무익한 종들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라.”(17:10)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섬김조차도 우리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일을 행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할 때, 주님께서는 자신을 향한 우리의 신실함에 대해 보상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섬김이 신실한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며,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신실하게 섬겼는지에 정확히 비례하여 보상하실 것이다. 그다음 주인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더 크게 사용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주님의 종들에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신실하다면, 우리는 그분의 왕국 사역에서 더 큰 권위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도 영원은 우리 주님을 점점 더 폭넓게 섬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께 신실하기를 원하신다. 영원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얼마나 잘 섬겼는지에 정확히 비례하여 그분을 섬기도록 허락받을 것이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똑같이 영원히 살고, 똑같이 구원받고, 똑같이 완전하며, 똑같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섬김의 역할까지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행한 섬김에 따라 책임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의 섬김은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며,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영광을 높이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죄가 완전히 제거되고 용서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전히 깨닫게 될 때, 그와 같은 기쁨이 하늘에서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과 같이 영원히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놀라운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신실하게 섬긴 사람들은 신실하지 못했던 성도들보다 하늘을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신실한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는 더 큰 일에 사용될 것이며, 하나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기쁨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맡겨진 것에 신실한 종에게 보상하시고, 그것을 등한히 한 종을 책망하신다. 당신이 맡겨진 것을 등한히 하면 어떤 변명도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다. 그 다음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나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는 엄격한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것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므로 두려워서 가서 땅 속에 당신의 달란트를 숨겨 놓았나이다. 보소서, 주인님의 돈을 가지소서.’라고 하니 그의 주인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곳에서 모으는 줄로 알았으니 그렇다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환전상에게 맡겨서 내가 돌아왔을 때 내가 원금을 이자와 함께 받게 해야 했으리라.그러므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되어 풍성하게 가지게 될 것이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되리라.너희는 그 쓸모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하더라.”(24-30).

  세 번째 종이 주인 앞에 나아왔다. 그러나 그는 한 달란트로 얻은 이익을 주인에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처음 받았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 줄 것이 없었다. 이 종은 주인 앞에 나아와 변명과 비난을 늘어놓았다. 그는 주인을 위해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주인을 인정이 없고 가혹하며 부당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24).

  그리고 자신이 두려웠기때문에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다가 그대로 돌려드린 것이라고 말하였다(25). 주인은 이 종의 변명에 대해 매우 엄하게 책망하였다. 그는 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르셨다(26). 그리고 그렇다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환전상에게 맡겨서 내가 돌아왔을 때 내가 원금을 이자와 함께 받게 해야 했으리라.”(27) 그 후 주인은 그 종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명령하였다(2829). 마지막으로 주인은 그 종을 너희는 그 쓸모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명령하였다.

  무익한 종은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 있으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는 전혀 맺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낭비한다면, 그가 행한 일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의 심판의 불 가운데 모두 타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은 여전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인 것처럼 그렇게 되리라.”(고전 3:15)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교회에는 속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주님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신다.

 

  만일 당신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자신의 섬김을 몇 점이나 주겠는가?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일을 신실하게 행하고 있는가? 당신은 주님의 교회에 신실한가? 당신은 주님께 드리는 예배에 신실한가? 당신은 주님의 사역에 신실한가? 당신은 날마다 변함없이 주님께 신실한가? 언젠가 당신이 주인을 만나게 될 때,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라. 또한 당신이 마땅히 드려야 할 섬김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면, 그 문제를 오늘 해결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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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나무 밭을 지키라

조도희 담임목사
사무엘하 23장 11절-12절
본문 말씀
11 그의 다음으로는 하랄인 아게의 아들 삼마니라. 필리스티아인들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함께 모였을 때, 백성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을 피하여 도망하였으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저지하여 필리스티아인들을 죽였으니,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더라.

  사무엘하 23장에는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들은 다윗과 함께 싸우며 그의 승리를 도왔던 고도로 훈련된 정예 군사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특별히 다윗의 친위 경호병 역할을 했던 세 명의 용사가 있었다. 그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은 삼마이다. 그는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굳게 맞서 싸워, 주님의 도우심으로 큰 승리를 거둔 사람으로 소개된다.

  본문은 필리스티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해 왔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쳐들어오자 모든 백성이 도망쳤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삼마만은 달랐다. 그는 녹두나무 밭 한가운데 굳게 서서 끝까지 싸웠고, 결국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원수의 공격 앞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도망칠지라도, 싸워야 할 때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원수의 공격 앞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녹두나무 밭을 지키려면 첫 번째로 원수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의 다음으로는 하랄인 아게의 아들 삼마니라. 필리스티아인들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함께 모였을 때, 백성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을 피하여 도망하였으나성경은 필리스티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해 왔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큰 충돌과 전쟁의 시기였다.

  원수는 방심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들에 있던 백성들이 모두 도망쳤다고 말한다. 이것은 원수가 아마도 추수철에 공격해 왔음을 보여 준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확을 거두는 일에 바쁘게 몰두하고 있었다. 그들은 추수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추수철은 기쁨의 때이다. 사람들은 곡식을 창고에 들여놓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수고를 마친 후 수확의 열매를 누릴 생각에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하는 일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쟁을 대비하지 못한다. 그때 원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기습하여 쉽게 무너뜨린다.

  우리의 대적 원수는 많은 경우 그는 우리가 큰 복을 누리고 있을 때 찾아온다. 큰 승리를 경험하고 있을 때 공격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아름다운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다른 일에 몰두해 있을 때 공격해 온다.

  얼마나 자주 삶의 분주한 일들과 교회의 여러 사역에 몰두하다가 원수의 공격을 받는가? 너무도 자주 우리는 요한계시록 2:1-7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원수가 이미 그들의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좋은 일에만 바쁘다 보니, 원수가 공격하여 자신들을 상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를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벧전 5:8). 또한 본을 남겨 두지 않으신 것도 아니다(4:16-18).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원수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일하면서도 깨어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원수는 사람을 해치고 추수를 파괴하기 위해 찾아온다. 원수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해. 농작물을 파괴하기 위해서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적에게 상처를 입히고 굶주리게 만들면, 그들을 쉽게 정복하여 노예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밭을 짓밟으며 지나갔고,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누구든 죽였다.

  우리의 원수인 마귀도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동일한 두 가지 이유로 우리를 공격한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영적인 추수를 망치기 위해서이다. 그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 자기 뜻대로 쉽게 끌고 가려 한다.

  마귀와 세상은 우리가 여기에서 교회를 가는 것 자체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찬송하는 것도, 설교하는 것도, 여러 교회 활동을 하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진지하게 섬기기로 결심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우리가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하면 마귀는 공격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 공격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진심으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기 시작하면 공격한다. 우리가 주변의 다른 교회들처럼 적당히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기로 결단하면 공격한다. 주님 편에 서기로 결심하는 순간, 어려움이 찾아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마귀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서 몇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불붙기 시작하면 조심해야 한다. 원수는 우리의 녹두나무 밭으로 쳐들어와 우리의 추수를 짓밟으려 할 것이다.

  원수는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더욱 담대히 공격한다. 본문은 원수가 쳐들어왔을 때 모든 백성이 그들 앞에서 도망쳤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원수가 발견한 것은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밭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사람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모든 일이 평안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마귀가 문제를 일으킨다. 그는 교회 안의 누군가를 이용하여 다툼과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면 대부분은 싸움의 현장에서 물러난다. 아무도 굳게 서려고 하지 않는다. 괜히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이다.

  우리는 세상이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큰 영적 전쟁 가운데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일하고 계시고, 마귀는 그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방해하며 맞서 싸우고 있다. 바로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상 속에 두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지키기 위해조차 굳게 서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담대히 맞서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시기를 바란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원수의 공격 앞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녹두나무 밭을 지키려면 두 번째로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때에도 용기 있게 굳게 서야 한다.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저지하여 필리스티아인들을 죽였으니,” 삼마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결단했다. 어쩌면 이전에는 도망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그 자리에 굳게 서서 싸우기로 했다. 설령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삼마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교회가 세상을 닮아 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수도 있다. 원수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짓밟도록 내버려 둔 채 숨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결단할 수 있다. “나는 주님의 편에 굳게 서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이 마귀에게 계속 방해받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결심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반드시 싸워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다짐할 수 있다.

  삼마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 싸웠다. 그는 먹을 양식이 없으면 백성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백성들이 먹으려면 밭이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그래서 그는 싸웠다.

  오늘날에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잃어버린 혼들, 하나님의 말씀, 성경적인 설교, 하나님을 향한 찬양, 거룩하고 깨끗한 삶, 교회의 명예와 거룩함, 우리의 가정, 우리의 다음 세대와 젊은이들.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생명을 내어놓고라도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믿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원수의 공격 앞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세 번째로 녹두 밭을 끝까지 지키면 주님께서 큰 승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더라.”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삼마에게 굳게 설 수 있는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싸울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승리할 지혜와 기술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이길 승리를 허락하셨다. 삼마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지만, 실제로 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골짜기로 내려갔을 때도 그랬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용광로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을 때도 그랬다. 다니엘이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승리를 주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치를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주님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싸움을 싸울 때 결과가 승리로 보이든 패배로 보이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행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함이다.

  주님께서 삼마에게 싸울 힘을 주셨다. 주님께서 그 밭과 백성의 추수를 지켜 주셨다. 주님께서 그 땅을 지켜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 굳게 서기를 결단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 녹두 밭을 지키셨다. 그 결과 백성들은 굶주림에서도, 노예가 되는 운명에서도 구원을 받았다. 우리가 굳게 서지 않는다면 사탄은 교회에서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빼앗아 갈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서 성경을 빼앗아 간다면, 다음 세대는 무엇으로 영의 양식을 먹겠는가? 그가 우리에게서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빼앗아 간다면, 누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그가 우리에게서 기도하려는 마음을 빼앗아 간다면, 누가 아버지께 부르짖으며 이 세상을 위해 중보자의 자리에 서겠는가? 우리가 오늘 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귀한 것들을 결국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내일 사람들은 영적으로 굶주리게 된다. 오늘 이 밭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뒤를 이어 올 다음 세대는 거둘 추수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원수는 필리스티아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했던 것처럼,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도망치고 있다. 추수의 현장을 버리고, 싸우기보다 도망가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오늘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원수가 교회를 마음대로 짓밟고 약탈하도록 그저 바라보고만 있겠는가? 아니면 삼마처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승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도망갈 때에도 당신은 당신의 녹두나무 밭을 지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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